본문 바로가기

"사람들이여 길을 잃어라, 그리고 다시 탐색하라"

중앙일보 2019.03.27 15:36
엘름그린 & 드라그셋, 'Adaptation, Fig. 7'( 2018, Stainless steel, 270 x 45 x 40 cm) [사진 국제갤러리]

엘름그린 & 드라그셋, 'Adaptation, Fig. 7'( 2018, Stainless steel, 270 x 45 x 40 cm) [사진 국제갤러리]

2005년, 미국 텍사스 지역의 마파 지역의 사막 한가운데 프라다 매장이 들어섰다. 이름은 '프라다 마파(Prada Marfa)'. 파란 하늘 아래, 마른 풀들 너머로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사막에 덩그러니 서있는 프라다 매장은 엉뚱한 장소에 있는 명품 매장의 '생경함' 그 자체로 눈길을 모았다. 사람의 그림자 보기도 어려운 이 사막 한가운데서 프라다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듀오 아티스트 엘름그린&드라그셋
국제갤러리서 개인전 4월 28일까지

 보는 이들에게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이 풍경은 덴마크 출신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58)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50)가 함께 만든 설치 작품이었다. 이후에도 이들의 독특한 작업은 계속됐다. 2016년엔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 뉴욕의 도심 한가운데 록펠러센터 광장에 9m짜리 파란 욕조를 세운 이들은 이 작품에 '반 고흐의 귀'란 제목을 붙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995년부터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잉가 드라그셋(왼쪽)과 미카엘 엘름그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5년부터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잉가 드라그셋(왼쪽)과 미카엘 엘름그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적응하는 인간'
이번엔 서울이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들이 정성스레 만든 '엉뚱한 것들'을 가져다 놓았다. 아예 아스팔트를 직사각형의 캔버스 형태로 제작해 실제 도로 표식에 쓰이는 흰색 페인팅으로 그림을 그려 전시장 벽에 걸었다. 
 
'하이웨이 페인팅' 연작이 걸린 서울 국제갤러리 K3 전시장. 아스팔트를 재료로 썼다. [사진 국제갤러리]

'하이웨이 페인팅' 연작이 걸린 서울 국제갤러리 K3 전시장. 아스팔트를 재료로 썼다. [사진 국제갤러리]

전시장 한가운데에 표지판도 세웠다. 그런데 이 표지판은 뭔가 다르다. 모양은 표지판 그대로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아무 내용이 없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런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 전시 개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이들을 만나봤다. 
 
 아스팔트 도로의 일부를 뚝 떼어온 듯하다. 
 작품이 '레디메이드'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도로에서 막 떼어온 것은 아니다(웃음). 처음부터 기획하고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현실에 있는 것과 많이 닮았지만, 살짝 비튼 거다. 
'Highway Painting, No. 8' (2019 Paint on asphalt, aluminium 205 x 105 x 8 cm) [사진 국제갤러리]

'Highway Painting, No. 8' (2019 Paint on asphalt, aluminium 205 x 105 x 8 cm) [사진 국제갤러리]

 
 왜 차선과 표지판을 소재로 택했나.  
 이것들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언어다. 우리는 지금 이것들을 우리 삶의 일부로 당연시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통제받고 지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가는 방향과 속도도 사실은 모두 통제 안에 있더라.
 
 이들은 "'어댑테이션(Adaptation·적응)'이 우리가 요즘 하는 연작 제목이면서 이번 전시 제목"이라고 "우리가 적응해온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교통 표지판에 내용이 없다. 그러면 우리는 길을 잃을 텐데.
 그것(길을 잃는 것)은 중요하다. 예술은 길을 잃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우리는 항상 '해야 할 일'을 하고,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언뜻 의미 없어 보이지만, 예술은 우리의 열망과 두려움, 판단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아보게 한다.
앞의 작품은 'Looped Bar'( 2018,Corian, MDF, stainless steel, beer taps, stools, 220 cm x 159.5 cm)와 벽면 작품은 ' Color Field' (2018 Corian, glass, Plexiglas, LED, aluminium, stainless steel 120.6 x 180.6 x 17 cm).[사진 국제갤러리]

앞의 작품은 'Looped Bar'( 2018,Corian, MDF, stainless steel, beer taps, stools, 220 cm x 159.5 cm)와 벽면 작품은 ' Color Field' (2018 Corian, glass, Plexiglas, LED, aluminium, stainless steel 120.6 x 180.6 x 17 cm).[사진 국제갤러리]

 
 '나에게 빠진 인간들'
K2 전시장에서 이들은 조금 더 다채로운 소재로 현대 사회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풀어놓았다. 'Looped bar(원형의 바)'도 그중 하나다. 언뜻 보면 바(bar)의 형상이지만, 안으로 누구도 들어갈 수 없게 막혀 있다. 현대사회의 소외와 공동체, 소속감, 무력감 등의 이슈를 냉소적인 유머로 풀어내는 그들의 관점이 읽히는 대목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바(bar)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로 십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바에서 만나고 소통했다. 그런데 요즘엔 모두 휴대폰과 SNS에 빠져 이런 공간은 줄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셀카'(Selfie)를 찍으며 모두 자기에만 빠져 있다. 잘 보면 알겠지만, 이 바의 맥주 탭은 바깥쪽에 있고 손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던 곳이 이젠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엘름그린(왼쪽)&드라그셋 듀오 아티스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엘름그린(왼쪽)&드라그셋 듀오 아티스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을 엉뚱한 맥락에 놓으며 작업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공격적으로 쏟아지고 있어서 누구도 그것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재발견하게 하고 싶었다. 사막에 가져다 놓은 프라다 매장도, 록펠러센터의 욕조도 그런 의미였다. 전통적인 조각과 회화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되 이를 새로운 매체(아스팔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등)로 작업하고 실험하며 우리가 지금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엘렘그린과 드라그셋은 각기 시인과 연극인을 꿈꾸다 만나 1995년 만나 퍼포먼스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며 지난 20여년간 작업을 함께 해왔다. 2002년 독일 내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인 함부르크 반 호프상을 수상했으며, 그 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과 뉴욕 록펠러 센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공공미술 얘기가 나오자 엘름그린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는데 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무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난 서울을 사랑한다. 서울은 정말 흥미롭고 멋진 도시다. 그런데 정말이지 끔찍한(horrible) 공공미술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좋은 작품들도 섞여 있지만, 나쁜 것들이 너무 많아 좋은 작품들이 묻히는 것 같아 아쉽다. 나쁜 공공미술 작품은 그 자체로 공해가 될 수 있다"면서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서울 공공예술의 80%는 철수를 고려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갤러리 K2 전시장. 오른쪽으로 '발코니의 남자' 설치 작품이 보인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발코니를 소재로 현대인의 상호관계를 성찰했다. [사진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K2 전시장. 오른쪽으로 '발코니의 남자' 설치 작품이 보인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발코니를 소재로 현대인의 상호관계를 성찰했다. [사진 국제갤러리]

'The Influence, Fig. 2'(오른쪽)과 'The Influence, Fig. 1'( 2019 Aluminium, lacquer, steel torso: 각 34 x 30 x 24 cm plinth: 각 108 x 38 x 38 cm). [사진 국제갤러리]

'The Influence, Fig. 2'(오른쪽)과 'The Influence, Fig. 1'( 2019 Aluminium, lacquer, steel torso: 각 34 x 30 x 24 cm plinth: 각 108 x 38 x 38 cm). [사진 국제갤러리]

 
 그들에게 물었다. 어떤 게 좋은 공공예술인가. 그들은 "다양한 종류, 다양한 규모의 공공예술이 있을 수 있다"면서 "공간이든, 우리의 삶이든 그것을 탐색하고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전시는 4월 28일까지. 
관련기사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