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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 채용비리엔 엄격, 김은경엔 관대한 법원의 '이중잣대'

중앙일보 2019.03.27 15:17
현장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여 혐의를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여 혐의를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스1]

두 종류의 채용비리 사건이 있다. 한 사건에서 법원은 "공정한 채용이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法, '최순실·관행' 언급하며 김은경 영장 기각
사기업 채용비리엔 구속영장 발부하며 엄격
김은경 "고의, 위법성 인식 희박했다"고 하지만
靑·환경부 낙하산 인사 매우 은밀히 진행

하지만 또다른 사건에선 "오랜 관행적인 측면이 있어 고의나 위법성의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며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첫번째 사건의 피고인은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두번째 사건의 피의자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다. 
 
우리은행은 점수 조작으로 유력자의 자녀를 합격자로 바꿔치기했다. 환경부는 청와대가 선별한 지원자에게 업무 계획서와 면접정보 등 특혜를 제공했다. 공모라는 채용절차가 무력화됐고 윗선의 낙점자는 대부분 합격했다. 검찰은 이 두 사안이 다르지 않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노동학 박사는 "신입사원과 달리 기관장은 잘못 뽑게되면 조직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며 "우리은행보다 환경부의 케이스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26일 '462자' 분량의 사유로 김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했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사기업 임원들은 최근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그러나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채용비리 혐의에는 '관행'을, 사표 강요에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여파를 강조했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김 전 장관의 혐의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법원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채용 과정에서 벌어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밀하게 진행된 산하기관 채용비리 
낙하산을 관행이라 언급한 법원은 김 전 장관에게 "고의나 위법성의 인식이 희박했다"고 밝혔다. 산하기관 임원으로 청와대 내정자를 임명하는 것이 위법한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 측도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질심사)에서 "장관의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라 항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환경부가 산하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는 과정은 매우 은밀히 진행됐다. 청와대와 환경부 공무원들 모두 자신의 행위가 위법한 것임을 알고 있다는 듯 낙점 인사에 대한 공식 공문이나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
 
면접정보와 업무 계획서도 선택된 자들에게만 조용히 전달됐다. 환경부 내부적으로 돌려보던 문건들은 모두 검찰 포렌식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KT 인사 채용비리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서유열 전 KT 홈고객부문 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KT 인사 채용비리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서유열 전 KT 홈고객부문 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당시에는 또한 지난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태'로 1급 공무원 3명에게 사표를 강요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유죄가 선고된 때였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당시는 공무원들에게 사표를 강요했던 전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던 시점"이라며 "위법성의 인식이 희박했다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무 공백을 정말 최순실이 초래했을까 
법원은 또한 최순실 사태의 여파를 들며 공공기관 임원들에 대한 사표 요구와 표적 감찰의 필요성을 일부분 인정했다. 공공기관 운영의 정상화와 인사수요 파악의 목적, 감찰 결과 일부 임원에 대한 비위사실도 드러나 혐의의 다툼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사표를 요구받은 전(前) 정부 임원들의 기억은 이와 달랐다. 요구가 아닌 강요에 가까웠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사용한 업무추진비까지 언급하며 "당신이 나가지 않으면 아래 직원들이 괴로워진다"는 감찰을 정상적인 감찰 행위로 볼 수 있을까. 해당 감찰 문건에는 "사퇴하기 전까지 무기한 감찰"이라는 표현도 적혀있었다.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한 환경부 산하기관 기관장들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한 환경부 산하기관 기관장들의 모습. [연합뉴스]

법원은 공공기관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지난 정부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은 뒤 수개월간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오히려 업무공백을 자초했다. 
 
사표를 내고 8개월째 그만두지 못했던 전병성 전 환경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솔직히 일하기가 힘듭니다"라고 털어놨다. "환경부가 대책없이 사표만 받아 업무 공백을 초래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법원, 우리은행 공적 성격있다며 엄벌 
지난 1월 10일 법원은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며 금융기관으로서 우리은행의 공적 성격을 강조했다. 
 
사기업의 채용비리에는 공적 특성을 언급하며 엄벌을 내렸던 법원이다. 같은 기준이라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공기관 임원 공모에 지원했던 수백명의 지원자들은 "이번 정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에 밤새 업무계획서를 작성하고 면접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낙하산 인사의 공정한 채용을 가장하기 위한 들러리였다. 검찰 조사를 받은 한 지원자는 "채용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심사 전 법원에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영장 기각 후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심사 전 법원에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영장 기각 후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오랜 관행이라 고의와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는 법원의 주장과 실제 환경부의 모습은 달랐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낙하산을 앉히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였다"는 청와대의 설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20년도 더 된 김영삼 정부 시절 전직 6급 공무원이 대통령과 산악회 활동을 한 뒤 공공기관 기관장에 임명됐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이젠 '가짜 뉴스'처럼 취급될 법도 한 황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단절되지 않은 관행이란 그림자 앞에, 이 옛날 이야기는 국회를 기웃거리는 정치꾼들에게 희망처럼 회자되고 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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