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600억 투자 사기’ 최초 제보자는 왜 감옥에 가게 됐을까

중앙일보 2019.03.27 12:00
“주범과 사무실 위치 등 핵심 정보를 다 넘겼는데…다른 공범들과 똑같이 형을 받다니요.”

법조계 "공익 제보의 딜레마"

 
지난 1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 6월 형이 확정된 변모(54)씨는 변호인을 통해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는 3600억원대의 투자금을 빼돌린 금융 다단계 업체 ‘성광테크노피아(이하 성광)’의 본부장이었다. 이날 변씨와 함께 기소된 이 업체 부장급 직원 이모(54)씨와 정모(77)씨, 본부장급 직원인 김모(72)ㆍ최모(71)ㆍ김모(78)씨 등은 5년~7년 6월의 징역이 확정됐다.

 
'성광테크노피아' 및 계열사인 '성광월드'의 다단계 투자 사기로 인한 피해자는 3400여명, 피해 금액은 3600억원에 달한다. [사진 백두산불법금융사기 순수피해자연대]

'성광테크노피아' 및 계열사인 '성광월드'의 다단계 투자 사기로 인한 피해자는 3400여명, 피해 금액은 3600억원에 달한다. [사진 백두산불법금융사기 순수피해자연대]

 
"1100만원 투자하면 30% 이익 보장" 문구로 현혹 
이들은 지난 2011년부터 7년 동안 3400여명의 투자자들을 꼬드겨 36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1100만원을 투자하면 미국 텍사스에 게임기를 설치해 3년간 매달 50만~60만원의 수익금(약 30%)을 지급하겠다”는 식이었다. 실제로는 나중에 들어온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불과했다.
 
사기행각의 공범 중 한 명인 변씨가 이제 와서 억울함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27일 변호인인 설경수 변호사에 따르면 변씨는 성광을 퇴사한 뒤 지난 2016년 12월 익명으로 검찰에 다단계 사기 행각을 제보했다. 아직 검찰 수사가 개시되기 전이었다. 설 변호사는 “당시 변씨가 청부 살인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극도로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걸 인식하고 나서는 제보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법원 "공익 신고자 절차 미비…감경 의무도 없다"
법정에서도 변씨는 “나는 공익 신고자이니 형을 감면해달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변씨가 주범들에 대한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를 공익 신고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익 신고자 등록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또 “설령 변씨가 공익 신고자라 하더라도, 법원이 반드시 감경·면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못박았다. 1심은 김씨에 징역 6년을, 2심은 징역 4년 6월을 선고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변씨의 항변이 먹히지 않았던 건 수사 협조를 이유로 형을 감경해주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에 대해 우리 법원이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 기관에서는 수사에 핵심 역할을 한 피의자를 기소에서 제외하거나 구형에서 선처를 해주는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횡령 사건의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국정농단 사건의 정유라씨 등이 그 사례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법원은 국정농단 공범으로 기소된 장시호씨에게 검찰 구형량(징역 1년 6개월)보다 높은 2년 6월 형을 선고하며 이런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수사 협조로 처벌 면죄부 안된다" 지적도
피의자 입건 전에 제보를 했더라도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공익 신고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오히려 변씨처럼 범죄 혐의자로 중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익신고자법은 284개 범죄 혐의에 한해서만 공익 신고를 인정한다. 여기에 형법과 특경법 등은 빠져있어 기업의 횡령이나 사기, 성폭력 사건 관련은 공익 신고로 인정받기 어렵다.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부패방지법과 마찬가지로 공익침해행위를 포괄방식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리 대상 법률을 정해놓지 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공익 신고를 인정해주자는 취지다. 다만 이에 대한 법조계 의견은 엇갈린다. 양태정 변호사는 ”수사에 협조했다고 본인이 저지른 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며 ”처벌을 낮춰주고 그걸 제도화하는 건 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는 형사소송법 원칙 자체를 흔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사라ㆍ이수정 기자 park.sar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