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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감탄하는 능력

중앙일보 2019.03.27 00:17 종합 33면 지면보기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황인숙 시인이 쓴 시 ‘담쟁이’를 읽었다. “눈을 감고 담쟁이는/ 한껏 사지를 뻗고 담쟁이는/ 온몸으로 모든 걸 음미한다/ 달콤함, 부드러움, 축축함, 서늘함,/ 살랑거림, 쓸쓸함, 따분함, 고요함,/ 따사로움, 메마름, 간지러움, 즐거움,” 이 시를 읽으니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이 이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여럿으로 매우 풍성할 수 있구나 싶다. 그만큼 이 시는 활발하고 신선하고 발달된 내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심드렁하고, 무심한 내면이 아니다. 말하자면 예민하되 흥이 많은 사람의 내면인 것이다.
 
요즘에 나는 평소에 감탄사를 어느 정도나 사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곤 한다. 감탄사는 어떤 것을 느꼈을 때 저절로 나오는 말이다. 사전에서 들고 있는 예로는 ‘아, 오, 야, 아이고, 아뿔싸, 이키, 흥, 영차, 에게, 아서라’ 같은 말이나 ‘예, 여보시오, 뭐, 구구, 글쎄, 왜, 아니’ 등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활짝 핀 목련을 보면서 옆 사람에게 “어머, 목련이 피었어요. 오리 부리 같은 목련이!”라고 말하거나 “오, 오늘은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이 아주 화창해요”라고 말할 때 ‘어머’와 ‘오’라는 말이 감탄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이러한 감탄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만이나 흠을 잡는 말만을 얼음처럼 꺼내놓을 뿐.
 
감탄을 잘 하는 능력에 깜짝 놀랐던 경우가 두어 차례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이란을 방문했을 때였다. 시 낭송회에서 낭송하는 이가 자신의 시를 읊는 도중에 객석에서 “옳지!” “훌륭해!” “얼씨구!”와 같은 감탄사가 연거푸 쏟아졌다. 마치 추임새와도 같은 그 감탄의 말은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다. 또 한 번은 미국의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샤 튜더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였다. 타샤 튜더는 바깥의 대상을 만나고 접할 때마다 “귀여워라!” “사랑스러워라!”와 같은 말을 아끼지 않고 했다. 그녀의 내면에는 밝은 빛이 가득 고여 있어서 바깥의 대상을 대할 때마다 그 빛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일상생활에서 되도록이면 긍정적인 감탄의 말을 자주 사용했으면 어떨까 한다. 감탄하는 능력을 키울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주 많다. 심리학자들은 갓 태어난 아기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에는 부모의 감탄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옹알이를 하거나, 첫걸음을 떼거나, 조그만 손을 쥐었다 폈다 할 때 부모가 호응해서 감탄하는 일은 아이에게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아이의 안정과 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음 읽기 3/27

마음 읽기 3/27

정신분석학자이면서 사회심리학의 개척자인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의 무기력이 분노와 공포, 신경증 같은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무기력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탄하는 능력을 키우고,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하고, 피하지 말고 갈등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들이야말로 감탄하는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백일장에서 한 초등학생이 쓴 다음의 시를 읽고 크게 웃은 적이 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기분 좋다./ 이힝 이힝” 이 아이는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왔을 때의 자신의 기분을 말의 울음소리에 경쾌하게 빗대었다. 장난스럽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나는 이 아이의 맑은 감탄이 너무 부러웠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아이들이 하는 몽상의 특징을 우리 마음의 원형들을 활성화하고, 원형들의 신선함을 되찾게 해준다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유년을 ‘천진함의 학교’라고 불렀고, 어른들은 잃어버린 유년의 몽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어른들은 엄숙하고, 딱딱하고, 감탄의 느낌표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유년의 몽상을 하면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철 좀 덜 들어도 괜찮은 것이다.
 
긍정적인 감탄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좋은 씨앗을 심는 일이다. 티베트 마음 수련법에서는 긍정적인 마음의 씨앗을 ‘하얀 씨앗’이라고 부른다. 하얀 씨앗을 심으면 사려 깊음, 인내, 활력, 용기, 보살핌과 같은 것을 얻게 된다고 본다.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에게, 새봄을 펼쳐 보이는 자연에게 감탄의 말을 아낌없이 건넸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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