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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대구의 기관총과 가영이의 눈물

중앙일보 2019.03.27 00:16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칠성시장 방문 때 청와대 경호원이 기관총을 들고 있던 장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정당 경호였는지 과잉 노출이었는지 양론이 팽팽히 맞선다. 어찌 됐건 많은 이들이 경호원 점퍼 품 안의 기관총 개머리판 사진이 강렬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사진과 오버랩돼 떠오른 또 하나의 사진이 더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같은 날 찍힌 대조적인 두 사진
“마음 한쪽은 서해로”의 찜찜함
우린 가영이에게 떳떳할 수 있나

같은 날 제4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장의 가영이 사진이다. 교복 차림의 가영이는 아버지 묘비 앞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가영이의 아버지 고 박경수 상사는 역전의 용사였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았다. 이를 악물고 살아났다. 하지만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려 한동안 배를 타지 못했다. 가족들도 만류했다. 그래도 불굴의 군인 정신으로 박 상사는 다시 함선 근무를 택했다. 그게 천안함이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해상경비 작전을 수행하다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 박 상사는 산화했다. 시신을 끝내 찾지 못했다. 당시 7살이던 막내딸 가영이가 이제 어엿한 16살이 됐다. 하지만 어떻게 아빠와의 소중한 기억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 사진 속 가영양의 흐느낌은 나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가영이의 눈물은 우리가 닦아줘야 할 눈물이다. 박 상사 같은 영웅을 기리고, 가영이 같이 남은 이들을 보듬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여론의 비난을 받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지만 그에게도 하나의 철칙이 있다. 미군 전사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1일 예멘에서 알카에다 격퇴 작전을 수행하다 사망한 네이비실 소속 오언스 중사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까지 날아갔다. 단 한 명이라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용사에 대해선 만사 제쳐놓고 챙긴다. 혹한이 몰아친 지난 1월에도 트럼프는 시리아에서 자폭테러로 숨진 4명의 유해 송환식을 끝까지 함께 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성명 발표를 해야 하는 가장 분주한 날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늦췄다. 송환식을 최우선했다. 트럼프는 수송기가 도착하자 4명의 시신을 싣고 온 수송기에 가장 먼저 올랐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 뒤 거수경례로 한 명 한 명을 맞았다. 그렇게 미국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미국을 만든다. 오바마도, 조지 W 부시도 예외는 없었다. 미 국민이 ‘대통령(president)’ 아닌 ‘대통령직(presidency)’을 신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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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국인에게 아직도 회자되는 게 오바마의 2016년 전몰장병 기념일 연설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군복을 입은 우리의 자식들을 통솔하는 것보다 위대한 책임은 없다. 그들을 위험한 곳에 보내는 것보다 중대한 책임은 없다. (중략) 국가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자뿐 아니라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자에 의해 그 격(格)이 결정되는 법이다. 그저 필요할 때 국기를 게양하고, 멈춰 서 묵념으로 그들을 기억할 게 아니다.” 이게 단지 미국에만 해당하진 않을 것이다.

 
지난 1월 시리아에서 자폭테러로 숨진 미군 등 4명의 유해송환식에 참석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수경례하고 있는 모습.

지난 1월 시리아에서 자폭테러로 숨진 미군 등 4명의 유해송환식에 참석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수경례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올해도 불참했다. 대신 대구에서 열린 로봇산업 육성전략 보고회와 칠성시장을 방문했다. 그러면서 “오늘 대구로 가는 길, 마음 한쪽은 서해로 향했습니다”라 SNS에 썼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 대통령을 현충원이 아닌 대구로 향하게 했을까. 왜 기관총을 들어야만 하는 대구 시장에 꼭 그날 가야만 했을까.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서해수호 영웅 55인을 찾는 게 그보다 못한 일일까. 그게 북한을 의식한 것이었다면, 북한은 그런 문 대통령에 고마워할까. 우리는 스스로 북한에 잘못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가영이에게 자신 있게 답해줘야 할 숙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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