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 논설위원
지금 한·일 관계도 매독에 상대방 이름을 집어넣던 옛 유럽 못지않다. 서로에게 긴요한 경제 동반자인데도 그렇다. 지난해 일본과의 교역은 총 85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미국에 이어 3위다. 두 나라가 함께 해외 자원개발을 한 것만 100건이 넘는다. 일본의 장비 없이는 ‘반도체 왕국’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제강점기의 만행에 대해 여태껏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것은 밉지만, 어쨌든 일본은 손잡아야 할 경제 파트너다.
그러나 양국 정치는 이런 관계에 쩍쩍 금을 갈랐다. 최장집 교수 표현에 따르면 ‘관제 민족주의’까지 동원해서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은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지난해 말 사법부가 강제징용 배상을 확정한 직후였다.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을 만나 “양국 간 우호 정서를 해치는 것은 미래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배상에 대해 “정부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해법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해법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선 강제징용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결정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러다 매독에 ‘일본 병’ ‘한국 병’이란 별명까지 덧붙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권혁주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