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두 진영 이야기(2): 대한민국의 실종

중앙일보 2019.03.27 00:15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보편을 추구할 때 가장 경계해야할 두 가지는 양비론과 양자택일이다. 둘은 진리를 가로막는 최대 장벽이다. 객관과 중용이 같이 가는 까닭이다.  
 

친일보수, 종북좌파 매도로
대한민국 실종과 쇠락 거듭
이순신의 당파 극복을 배워
민주공화국 다시 살려내야

그러나 우리는 상대 진영의 흠결을 공격할 때는 불법·불의라고 맹공하다가도 자기 진영의 똑같은 흠결을 방어할 때는 합법·정의라고 우겨대는 행진이 5년 주기로 생중계되며 반복되고 있다. 결국 반대어마저 동의어가 되어 이제 투기와 거주, 탈세와 절세, 적폐와 관습, 위법과 준법은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얼마 후 우리 아이들은 불법과 합법, 불의와 정의의 기준을 또렷이 체득할지 모른다. 그건 권력이라고.
 
아이들이 이 시대를 보고도 반대로 깨닫는 선천적 분별지를 갖고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시대를 그대로 배워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알아서 반(反)시대적=친교육적이기를 바란다. 금이라고 주장하던 많은 것들이 5년 후에는 은, 또는 구리라고 밝혀지고, 심지어 납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정의도, 도덕도, 그리고 외교도, 미세먼지도, 교육도, 양극화도, 출산율도, 인구절벽도 그렇게 납으로 변해가고 있다. 두 진영의 번쩍이는 금들만 모아놓았는데 결과는 구리요 납이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지금 여기’의 옆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공화와 영구평화를 위한 근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쟁세력을 친일보수, 종북좌파라고 매도한다. 문제해결이 어렵고 무능할수록 관제이념의 동원은 기승을 부린다. 한 편이 상대를 종북좌파, 김정은 대변인, 빨갱이라는 오래된 관제 반공주의로 공격하면, 다른 한편은 상대를 친일보수, 아베 대변인, 토착왜구라는 새로운 관제 반일주의로 받아친다.
 
내부로부터 우리는 이미 절반은 빨갱이, 절반은 친일파로 규정되어 버렸다. 스스로 자기들 절반을 적국파- 절반은 식민시대의 적국파, 절반은 분단시대의 적국파-로 낙인찍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 절반이 우리 언어와 내면가치로부터 동시에 실종된 것이다. 그들에겐 친일파 대한민국과 빨갱이 대한민국만 존재한다. 둘을 합치면 대한민국 정체성의 완전 실종이다. 전혀 맞물리지 않은 두 외부요인으로 나라절반을 매도하는 치욕스런 강박(증)국가, 의존국가, 분열국가 된 것이다. 서로 포용도 협조도 없다.
 
탁월한 역사학자 랑케가 제시한 유명한 명제 중에 ‘외교 우위’의 원칙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 국가의 발전과 명운은 국내정치보다는 외교, 즉 국제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국가발전에서 국내정치와 국제관계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문제는 현대 정치학과 역사학의 커다란 논쟁이었다. 그러나 심층연구들에 따르면 둘은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규정적이다. 내쟁의 극복과 대내 연합의 정도는 대외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된다. 국가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외관계 대처에서 선결 요인은 내부타협과 국내평화다. 내분상태에서 효과적인 외부대처는 불가능하다. 특히 대외 위기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내쟁상태는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랑케 이전에도 국내-국제 문제는 누천년을 지속한 논쟁의제였다. 근대 민주공화 제도를 창설할 때에 선현들은 어떻게 하면 내부 평화와 외부 평화, 삶의 평안과 나라의 평안을 결합할 것인가를 으뜸으로 고민했다. 민주공화 제도를 창안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곧 항구평화의 창출과 유지였다.
 
즉 ‘민주공화’라는 국가제도 고안과 등장의 근본 원인과 목적은 ‘민주국가’의 창설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통한 ‘공화국가’, 즉 ‘평화국가’의 창안이었다. 민주 없이는 공화 없고, 공화 없이는 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내부 평화가 없다면 대외안전을 통한 영구평화도 없었다. 민주공화 체제는 갈등과 전쟁을 넘어 영구평화를 안출하려는 인류의 가장 절실한 소망의 산물이다. 여러 연구들이 잘 규명했듯, 오늘의 ‘민주국가’ ‘민주주의’는 ‘민주공화’ 등장 당대의 용어로는 ‘공화국’ ‘공화주의’였다.
 
대한민국에 친일파정부와 빨갱이정부는 없었다. 조사에 따르면 독일은 1970년까지 내무관료의 54%가 나치 출신이었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았다. 우리의 경우 친일파 출신 각료는 이승만 자유당 정부보다 장면 민주당 정부에서 두 배나 높았다. 전자는 31.4%, 후자는 60%였다. 혁명파 정부의 실상이었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도 빨갱이의 나라도 아니다. 부끄러운 일부가 남아있었으나 공적 부문에선 과거극복 노력을 통해 그조차도 넘어섰다. 물론 그 일부가 나라 전체를 표상하지도 대표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더더욱 없다. 역사연좌제를 단호히 끊고, 능력과 업적으로 승부를 걸어라.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할 때, 현명한 사람들은 과거치욕의 자기요인을 반성하고 미래재발을 막는다. 그러나 바보들은 더욱 갈라져 다투며 쇠락을 반복한다. 목숨 걸고 끝내 진영과 당파를 넘은 이순신의 절규였다. 그의 사생결단이 다시 절절히 들려온다. 온 나라가 두 쪽 나 있다.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즉시 이순신을 읽으시라.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