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여운을 남긴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왼쪽)과 배우 김혜자. [사진 JTBC]](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27/eb220f1d-9259-484d-b670-6021d1718f6f.jpg)
진한 여운을 남긴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왼쪽)과 배우 김혜자. [사진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이어받아
“치매문제 진실되게 그리려 애써”
후반부 반전에 돌 맞을까 걱정도
“이남규·김수진 작가의 협업 빛나”
타임슬립 서사에 코미디를 섞고, 결국엔 ‘대단하진 않지만 살 가치가 충분했던’ 개인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길어올린, 수려한 연출력도 웰메이드란 평가에 큰 몫을 했다. JTBC 개국드라마 ‘청담동 살아요’로 김혜자와 인연을 맺은 김석윤(55) 감독은 이 작품이 ‘청담동 살아요’의 연장선이라 했다. 주인공 혜자가 50년전 자신과 소통하는 마지막회 내용이 ‘눈이 부시게’의 씨앗이 됐다는 의미다.
- 왜 김혜자였나.
- “‘청담동 살아요’ 속편이 나오면 출연하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예 김혜자 헌정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협업해온 이남규·김수진 작가와 평소 관심있던 노화 소재로 진실된 스토리를 만들려 했다.”
- 그런 드라마에 출연하는 걸 김혜자 배우가 흔쾌히 동의했나.
- “선생님이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치매 관련 작품을 안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멋진 작품’이란 우리의 말을 믿고 출연해주셨다. 치매를 부정적이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뿌듯해하신다.”
- 25세 연기에 대해 부담이 컸을 것 같다.
- “선생님이 부단히 연습하셨고, 현장에서 ‘목소리 얇게 가볼게요’라고 가끔 주문한 것 외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신의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운 혼신의 연기였다. 먼저 떠나보낸 남편 등 자기 삶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 상당히 감정이입하신 것 같다. 치매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10회 엔딩에서 자신의 젊은 모습인 한지민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 치매 환자의 내면으로 들어간 최초의 작품이란 평가다.
- “김혜자 배우와 노화에 대한 드라마를 하기로 했으면, 과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매 노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에 집중했다. 머릿속에 섬망과 과거 기억, 바람이 섞였다는 전제하에 모든 스토리가 가능했다.”
- 엄청난 반전을 감춰놓았기에 부담도 컸을 듯하다.
- “흥미로운 전개로 시청자들을 붙들어뒀다가 반전이 밝혀진 후반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반전을 알고 다시 봐도 허망하지 않도록 아귀를 맞추려 했지만, 부담도 컸다. 반전이 나오는 10회가 끝나고 시청자들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난과 함께 돌 맞을 줄 알았다. 하지만 홍보관 노인들이 감금된 준하(남주혁)를 구출해내는 ‘노벤져스’ 활약을 기점으로 반전이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세상엔 늙은 사람과 아직 안 늙은 사람이 있을 뿐이란 것이다. 노인들을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던 것처럼 대하는 시선과 혐오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늙음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면 세대 갈등이 있을 수 없다.”
- 노인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노인복지원에 다니는 80대 노모의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걸 보며 치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 쓸쓸한 노년의 삶과 출구 없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포개놓았는데.
- “‘청담동 살아요’ ‘송곳’ 등의 작품을 통해 좌절과 꿈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얘기를 해왔기에 이 작품에도 자연스레 ‘흙수저’들이 들어간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88만원 세대가 위안받았다니 기분이 좋다.”
-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오로라처럼’이란 대사가 젊은 세대에 큰 위안이 됐다.
- “혜자와 준하가 함께 바라보는 이상향으로서 오로라를 떠올렸는데, 김수진 작가의 손끝에서 스스로 에러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 모든 준하를 보듬는 치유의 말로 바뀌었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는 감동적인 엔딩 내레이션도 김 작가가 썼다. 이남규 작가의 코미디, 김 작가의 감동적인 대사가 합쳐져 드라마가 순항할 수 있었다.”
- 준하의 고문사 대목에서 유신에 맞서 싸운 언론인 장준하의 의문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 “준하란 이름은 그의 죽음을 고문사로 결정하기 전에 지은 것이다. 나중에 장준하 선생이 떠오를 수 있겠단 생각을 했지만, 굳이 바꾸고 싶진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유품인 시계 등 우연이 너무 겹치다 보니, 장준하 선생이 신묘하게 작품 속으로 들어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어떤 장면에서 가장 눈물이 났나.
- “마지막회 혜자가 눈 쓸다가 아들(안내상)과 화해하는 장면에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은 혜자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어린 아들 손을 잡고 퇴근하는 남편 준하를 마중하던 때를 꼽는 회상신이다. 노을을 더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내 예전 기억과 겹쳐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이 때 김 감독의 눈시울이 다시 촉촉해졌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