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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아마존 효과’ 관찰기

중앙일보 2019.03.26 18:09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년)의 한 에피소드. 가상 공간인 거울 나라에 온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이처럼 조언했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인간 세계에 비해 지나치게 속도가 빨랐던 이 공간에서 앨리스는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학계에서 ‘붉은 여왕 가설’이란 경영학 개념으로 재정립됐다. ‘경쟁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는 의미다. 1996년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바넷 교수가 제시했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 금융 행사 ‘머니2020 아시아’에서 마주한 몇몇 글로벌 기업들은 ‘현대판 앨리스’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출범한 에어아시아 전용 모바일 플랫폼인 '빅페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조진형 기자]

지난해 출범한 에어아시아 전용 모바일 플랫폼인 '빅페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조진형 기자]

 
아시아 최대 저비용 항공사인 에어아시아가 선두 대열에 있었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자사(自社)를 “핀테크 기업”이라고 칭하곤 했다. 그는 지난해 에어아시아 고객 전용 모바일 결제 플랫폼인 ‘빅페이’를 선보였다. 주력 사업(항공업)에 더해, 금융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유명 정보기술(IT)컨설팅업체 IBM 역시 블록체인 기술이 탑재된 국제 현금 송금 및 결제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행사에서 본지 기자와 마주한 두 기업 핵심 관계자들은 특정 기업명(名)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바로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다. 먼저 페르난데스 회장과의 대화 중 일부.
 
-핀테크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과거 소규모 온라인 서점이던 아마존의 현재 사업은 사실상 전(全) 부문에 확장돼 있다. 에어아시아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의 규모는 약 4000만 명에 달한다. 방대한 DB를 기반으로 핀테크 시장에 정착한 뒤, 언젠가 항공사 최초로 암호화폐까지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 2014년 한국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가 끝내 실패했던 에어아시아는 이런 핀테크 사업을 발판 삼아 한국 기업들과 전자상거래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일 '머니2020 아시아'에서 만난 제시 런드 IBM 부사장(블록체인 솔루션 및 금융 서비스 부문). 왼쪽은 암호화폐 스텔라를 개발한 제드 맥캘럽. 스텔라는 IBM의 블록체인 기반 현금 송금 시스템에 쓰였다. [조진형 기자]

지난 20일 '머니2020 아시아'에서 만난 제시 런드 IBM 부사장(블록체인 솔루션 및 금융 서비스 부문). 왼쪽은 암호화폐 스텔라를 개발한 제드 맥캘럽. 스텔라는 IBM의 블록체인 기반 현금 송금 시스템에 쓰였다. [조진형 기자]

 
제시 런드 IBM 부사장(블록체인 솔루션 및 금융 서비스 부문) 역시 아마존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과거 IBM은 컴퓨터 제조업체였다. 왜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했나.
“아마존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꾸준히 클라우드 컴퓨팅에 투자했다. 그 결과 이를 기반으로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로 자리잡았다. 아마존과 경쟁에서 밀린 상당수 소매업체들은 시장에서 퇴출됐다. IBM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의 전신이 IBM의 전기 타자기였듯이,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은 IBM의 핵심 사업 기반이 될 것이다.”
 
두 기업이 아마존을 표방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온라인 쇼핑 시장 뿐 아니라, 아마존 고(무인 매장)·아마존 북스(서점) 등 오프라인 시장을 넘나드는 아마존의 거침없는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세계 곳곳에서 전통 사업과 첨단 사업의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매출이 줄어든 스마트폰 제조업체 애플은 최근 뉴스 및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 저변을 확대했다.
 
오늘도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아마존을 쫓아 자기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아마존의 혁신을 ‘한국의 앨리스’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조진형 글로벌경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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