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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와 서울시가 엉터리 과학에 포획되어버렸다"

중앙일보 2019.03.26 11:53
연구실에서 분자모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준호 기자

연구실에서 분자모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준호 기자

 
“환경부와 서울시가 엉터리과학에 포획되어버렸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유명한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정부와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 교수는 26일 본지에 보내온 글에서 환경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한국형 공기정화기에 대해 “가로ㆍ세로 100m, 10층 건물에 해당하는 공기 정화가 목표인데, 아파트 1개 동 해결에도 역부족인 수준”이라며 “자연의 거대한 규모(scale)를 고려하지 못한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내놓은 플라즈마를 이용한 터널 미세먼지 해결안에 대해서는“터널 내 미세먼지 제거 효과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저속으로 터널 내부를 달리면서 교통 흐름 방해해 미세먼지 공해를 더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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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이덕환 교수의 기고.  
 
[기고] 과학이 흔들리는 사회
 정부가 재난 수준의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기상천외한 제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야외에 대형 공기정화기를 설치하고, 터널에 플라즈마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자연의 거대한 규모(scale)를 고려하지 못한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과학기술의 가치를 극도로 왜곡하고 폄훼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엉터리 기술을 가려내기 위한 최소한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정부의 무지와 무모함이 도를 넘어섰다.
 
고작 1억~2억원짜리 ‘한국형’ 공기정화기를 건물 옥상에 설치해서 미세먼지를 해결하겠다는 환경부 장관의 발상은 놀라운 것이다. 온풍기나 에어컨으로 한파나 폭염을 극복하겠다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바가지로 서해 바닷물을 퍼서 옮기겠다는 수준의 무모한 시도이기도 하다. 무엇이나 ‘한국형’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만능의 요술지팡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허겁지겁 개발할 한국형 정화기를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 생산이 미세먼지를 악화시켜버릴 수도 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긴급조치 강화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긴급조치 강화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토픽에 초대형 공기정화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세먼지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술가의 작품도 있고, 미세먼지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다.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는 없다. 축구장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시안(西安)의 거대한 공기정화기도 사실은 가로·세로 100미터의 10층 건물에 해당하는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 목표다. 한 개 동(洞)의 미세먼지 해결에도 역부족인 성능이다.
 
플라스마 기술을 들먹이는 서울시장의 분별력은 훨씬 더 절망적이다. 공짜 버스 제안으로 150억 원의 소중한 세금을 허공에 날려버린 과거의 실수를 만회해보겠다는 절박한 노력은 가상하다. 그렇다고 ‘플라스마’나 ‘광촉매’와 같은 엉터리 과학기술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라돈 침대도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엉터리 과학 때문에 일어난 황당한 일이었다.
 
플라스마는 고온이나 강한 전자기장에 의해서 이온화된 물질을 말한다. 흔히 플라스마라고 하면 태양이나 핵융합로를 떠올린다. 그러나 형광등·네온사인·브라운관에서도 플라스마 기술을 이용한다. 서울시장을 유혹한 기술은 그런 플라스마를 이용해서 터널 안에 물을 분사시키는 기술인 모양이다. 그런데 물을 안개처럼 분사시킬 수 있는 평범한 기술은 차고 넘친다. 굳이 낯선 플라스마 기술을 동원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종로구 관계자와 주민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31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새봄맞이 대청소'를 실시, 시내 모든 도로에서 대대적인 미세먼지 제거에 나선다고 밝혔다. [뉴스1]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종로구 관계자와 주민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31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새봄맞이 대청소'를 실시, 시내 모든 도로에서 대대적인 미세먼지 제거에 나선다고 밝혔다. [뉴스1]

 
평균 시속 13.2㎞의 플라스마 트럭으로 시속 60㎞로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가로막아야 할 이유도 없다.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플라스마 트럭 때문에 발생하는 교통 체증이 오히려 터널 안의 미세먼지 상황을 악화시켜버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차가 밀리는 러시아워에는 플라스마 트럭도 무용지물이 된다. 플라스마 트럭 자체가 발생시키는 미세먼지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정작 국민을 괴롭히는 것은 터널 안의 미세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터널 안의 미세먼지를 줄인다고 터널 바깥의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학적 상식은 부족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는 능력은 갖춰야 한다. 사기술에 가까운 엉터리 과학에 포획되어버린 환경부와 서울시가 걱정스럽다.
 
이덕환

이덕환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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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