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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장기각 사유 462자···'최순실 일파' 표현 논란

중앙일보 2019.03.26 11:04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 접촉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 접촉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뉴스1]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 영장을 기각한 서울동부지법 박정길(50‧사법연수원 29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2시 462개 글자를 써 사유를 밝혔다. 사유에는 ‘최순실 일파(一派)’라는 표현이 들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일파는 학문이나 종교, 예술‧무술 따위에서 한 갈래를 의미한다. 경남 창녕 출생인 박 부장판사는 마산중앙고와 한양대 법대를 나와 춘천지법·의정부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박 판사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감찰권이 행사되지 않았던 사정이 있다”며 “(현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인사수요 파악의 필요성, 감찰 결과 (일부 임원에 대한) 비위 사실이 드러난 점에 비추어 김 전 장관의 혐의에 다툼이 있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판사가 법리보다는 정치 용어를 택했다며 비판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52·사법연수원21기)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사안을 놓고 지난번엔 블랙리스트라며 중형을 선고하고, 이번에는 인사협의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구속영장 기각”이라며 ‘로또 사법의 시대’라고 적었다.  
 
 법무법인 이경의 최진녕(48‧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행위는 나쁘지만 상황이 그랬으니 괜찮다는 건 최순실 일당은 다 나쁘니까 나쁜 짓 하는 걸 정당화 하는 과정에서 한 거라 양해가 된다는 건데 지금까지 이런 불구속 사유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들 리베이트도 지금까지 관행이었다”며 “판사인가 정치인인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박 판사가 영장 기각 사유 마지막에 적은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구성 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는 표현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판사 생활 30년 하면서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라는 사유는 처음 본다”며 “나중에 양형 심사 기준은 될 수 있어도 기각 사유로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김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실행할 당시 문체부 블랙리스트로 전직 정부 관계자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는 법원의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각 사유에 1993년 7월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 것도 논란이다. 당시 판결은 교도관의 접견신청 허용에 관한 직권 남용에 관한 결정이다. 재판장이던 김석수(87) 전 국무총리는 교도관의 접견신청 거부에 대해 애초부터 직권남용에 대한 범의(犯意)가 없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사 출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유감스럽다”며 “26년 전의 대법원 판례까지 인용했다는 부분에서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영장 기각에 대해 이날 서울 동부지검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은 일단 존중하돼 다시 효율적으로 (수사) 할 수 있을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김민상‧박사라‧박태인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영장 기각 사유(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
'사표 요구 및 표적 감사' 관련
 
일괄사직서 징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추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

 
 
'채용 비리 혐의' 관련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음(대법원 1993.7.26자 92모29 판결 참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관련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되어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추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함.

 
 
 
2019.3.26 판사 박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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