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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한테 매형 소개시킨 '브로커 검사' 사건의 전말은

중앙일보 2019.03.26 06:00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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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을 잘 알고 마무리 작업할 수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 줄게요.”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가 이런 제의를 한다면 솔깃해하지 않을 피의자가 있을까. 지난 2010년 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 김모씨는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박모(45) 검사로부터 한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연락처의 주인은 김모(54) 변호사. 그는 알고보니 박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매형이었다.

 
매형 알선해주고 피의자한테 억대 받은 검사
김 변호사 역시 “박 검사는 내가 부탁하면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다 해준다”며 김씨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김씨는 박 검사가 담당하는 2개의 사건을 무마하는 대가로 현금 1억 4000만원을 건네고 그를 선임했다. 통상적인 형사사건 수임료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김 변호사는 “검사랑 친분을 이용하는 거니 노출하지 말라”며 김씨에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 뒤, 선임계도 내지 않은 채 ‘몰래 변론’을 했다. 이후 김씨는불구속기소 돼 2012년 8월 1심에서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세 명의 ‘은밀한 거래’는 첩보를 입수한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2012년 12월 수사에 착수하면서 들통났다. 감찰본부에 불려간 김씨는 “박 검사가 먼저 제안했다”고 진술했고, 병원 직원이 박 검사 등과 나눈 통화 녹취록 여러 개도 증거로 제출했다. 로비 정황이 생생하게 담긴 녹취록을 확보한 검찰은 박 검사와 김 변호사를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검사는 2013년 면직됐다.

 
당시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브로커 검사’ 사건의 전말이다. 변호사들이 거액을 대가로 수사기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형적인 ‘법조 로비’였지만 현직 검사가 연루된 적은 처음이었다.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내부 적과의 전쟁, 즉 우리의 오만과의 전쟁에서 졌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약 7년간 법정 공방을 이어온 이 사건은 당사자인 박 검사가 집행유예를 받는 것으로 결론 났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박 전 검사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김 변호사에게 징역 1년과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14일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법원 "일부 불법 녹음 있었어도 유죄 충분"
재판에서 박 검사는 1~3심 내내 김씨 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이미 가족인 걸 알고 선임을 한 김씨와 김 변호사를 차마 말리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 역시 “정상적인 사건 수임료에 불과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김씨가 제출한 일부 녹음파일이 불법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도 폈다. 통화의 당사자가 김씨의 병원 직원과 박 검사이고, 김씨는 이를 옆에서 스피커폰으로 엿들은 뒤 녹음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였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 간의 대화가 아닌 ‘타인 간의 대화’ 녹음을 금지하고 있다.

 
1ㆍ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박 검사가 “검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채 그릇된 행동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다른 검사에게 실망감과 자괴감을 안겨줘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했다”고 꾸짖었다. 김 변호사에게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천하는 변호사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이익을 꾀했다”고 지적했다. 불법 녹음 주장도 김씨와 병원 직원, 박 검사 간 ‘3자 대화’라고 볼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박 검사와 김 변호사를 유죄로 판단했으나, 일부 ‘불법 녹음’이 있었다는 건 인정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병원 직원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녹음한다는 걸 또 다른 통화 당사자인 박 전 검사가 몰랐으므로 이는 감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해당 통화 내용을 제하더라도 나머지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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