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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의 생활건축] 서울에 가우디 아파트가 필요한 걸까

중앙일보 2019.03.26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2007년 『아파트 공화국』을 출간하면서 한국 아파트 전문가가 됐다. 프랑스는 현대 아파트의 창시자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활동한 나라였지만 정작 아파트는 빈민층의 주거모델로 주목받지 못했다. 1994년 서울을 방문한 학자에게 한국 아파트의 인기는 놀라웠다. 그의 동료가 한강 변에 늘어선 반포 아파트의 사진을 보고서 군사기지인 줄 착각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새삼스럽지 않은 우리 주거 풍경이다. 최근 서울시는 도시계획 혁명 선언을 했다.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아파트 공화국에서 탈피해, 미래 100년 서울의 도시경관을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잠실주공5단지의 모습.

서울 잠실주공5단지의 모습.

딱 1년 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아파트 디자인 혁신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똑같은 아파트 디자인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발표 시기는 잠실주공 5단지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이 공개될 즈음으로 조율되고 있었다. 공공성을 더하는 대신 50층 건축 인센티브를 주는, 국내 재건축 단지 역사상 처음 치른 국제설계공모전이었다.
 
하지만 당선자인 조성룡 건축가는 1년째 설계 계약도 못하고 있다. 단지 내 도로 등의 문제로 주민 반발은 거세다. 시는 수수방관 중이다. 갈등이 계속되자 디자인 선언은 자취를 감췄다가 1년 뒤 도시계획 혁명 선언으로 부활했다. 난데없이 ‘가우디 아파트’가 주요 키워드가 됐다.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자라난 바르셀로나의 아이들과 성냥갑 같은 건물을 보고 자라난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다.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는 진정한 국민주택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공이 투자를 안 해서다. 도시 인프라 구축도 주거 마련도 민간에서 아파트 단지로 해결해온 터다. 아파트 담장 밖이 안보다 좋으면 담장을 칠 이유가 없다. 아파트 공화국을 탈피하려면 문제 진단부터 다시 해야 할 듯하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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