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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막돼먹은’ 출국금지

중앙일보 2019.03.26 00:28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아무도 모르게 그를 공항에서 돌려보냈어야 옳다. 성폭행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소동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 수사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줄여서 ‘출금(出禁)’이라 불리는 전문용어가 내포한 위험성을 알기에 그렇다. 출금은 법조 출입기자(법원·검찰 담당)를 해 본 이에겐 ‘심장이 쫄깃’해지는 단어다. 수십 년간 대형 게이트·스캔들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유력자의 출국을 금지했다는 검찰발(發) 특종을 시작으로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따라서 검찰의 ‘입’(수사 브리핑을 하는 검찰 고위 간부)에 챙겨 물어야 했다.
 
“○○○ 출금했나요?” “허허, 잘 아시면서 또 묻네. 확인도 부인도 못 해 줍니다.” 초년병 기자는 “법조계를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라는 검사의 훈계를 듣기도 한다. 답변 취지는 한결같다. “출금은 수사기관도 제대로 조사하기 전 의심 단계에서 한다. 만일의 사태(도주)에 대비해 간단히 이뤄지거나 풀린다. 법률가로서는 확인해 줄 수는 없는 팩트다. 함부로 보도하면 소송당한다. 우린 책임 못 진다.”
 
판사의 발부 도장이 찍힌 구속영장 사본이 돌아다니던 ‘인권 불감’의 시절에도 출금은 취재와 보도가 조심스러운 ‘팩트 아닌 팩트’였다. 자연스레 이런 가설도 생겼다. ‘검찰이 수사를 유리하게 몰아가거나, 정권의 입맛에 맞게 정국을 반전시키는 데 직방이다.’ ‘찌라시’ 수준의 의혹도 출금의 형식으로 여론을 흔들 수 있었다. 늘 음모론이 따라붙고, 검사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뒤에 숨으려 한 이유다.
 
김 전 차관에겐 더 생소한 ‘긴급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가 자초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누구든 도망자나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옛 가설의 함정은 경계해야 한다. 촛불 민심이 ‘막돼먹은 정의’를 바라진 않는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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