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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이대호 선수협회장, 최동원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2019.03.26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김식 스포츠팀 기자

김식 스포츠팀 기자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37)가 25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어려운 시기에 선수협 회장을 맡게 됐다. 선수들의 이익만 챙기기보다 팬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평범하게 들리는 이 취임사를 듣기 위해 선수들은 2년을 기다렸다. 2017년 4월 이호준 전 회장이 사임한 뒤 선수협은 회장을 뽑지 못했다. KBO리그 등록 선수가 586명(2019년 기준)에 이르지만 ‘선수를 대변할 선수’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회장이 없는 선수협은 협상력을 상실했다. 지난해 10개 구단이 KBO(한국야구위원회)를 통해 제시한 FA(자유계약선수) 개정안을 선수협은 거부했다. 여기에는 FA 총액 상한제(4년 기준 80억원) 같은 스타 선수에게 불리한 항목이 있었다. 그러나 최저연봉 인상, FA 연한 단축 등 많은 선수에게 유리한 항목도 포함돼 있었다. 일종의 ‘패키지딜’이었다.
 
선수협이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면 내부 논의를 거쳐 수정안을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막후에서 일부 선수들이 FA 총액 상한제를 거부하며 판을 깼다. “선수협이 고연봉 선수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FA 대박과 거리가 먼 많은 선수의 불만도 커졌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투쟁력을 잃은 선수협을 구단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대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이 25일 부산 사직야구장 광장에 있는 고(故) 최동원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생전 최동원은 선수들 권익보호를 위해 선수협의 필요성을 말했다. [연합뉴스]

이대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이 25일 부산 사직야구장 광장에 있는 고(故) 최동원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생전 최동원은 선수들 권익보호를 위해 선수협의 필요성을 말했다. [연합뉴스]

이후 선수협은 몇 차례나 회장을 선임하려 했다. 그러나 자천도, 타천도 없었다. 골치 아픈 일에 나서지 않으려는 선수들의 이기심만 드러날 뿐이었다. 결국 선수협은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어 각 구단 연봉 1~3위 등 총 30명의 후보를 강제로 선정했다. 그래서 ‘억지 춘향’격으로 회장을 맡은 이가 최고 연봉(25억원)을 받는 이대호다.
 
1988년 고(故) 최동원은 선수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조(선수협)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역설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선수협 결성을 위해 싸웠다. 2000년 선수협이 탄생했을 때는 국민 대다수가 적극 지지했다. 지금 선수협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선수들이 자초했다. 연봉과 인기가 치솟는 동안 그들은 승부조작, 음주운전, 불법도박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KBO리그 선수들은 시장이 훨씬 큰 미국·일본의 야구선수들보다 팬들에게 불친절하다. 경기력마저 떨어진다.
 
기자회견에 앞서 이대호는 부산 사직야구장 광장에 있는 최동원 동상을 찾아 헌화했다. 30년 전 최동원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장면이 단지 퍼포먼스가 아니길 바란다. 선수협이 밥 투정을 부리는 배부른 노조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김식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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