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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했다" 그 기쁨의 환호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중앙일보 2019.03.25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6)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을 쨌지만 기도가 보이지 않아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사진 pixabay]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을 쨌지만 기도가 보이지 않아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사진 pixabay]

 
“환자 산소포화도가 떨어집니다.”
 
더는 주저할 수 없다. 이제는 시간 싸움이다. 기도를 찾지 못해도 실패, 시간이 오래 걸려도 실패다. 실패는 곧 환자의 죽음을 뜻한다. 차분히 시술해도 쉽지 않을 판에 시간제한이라는 압박감까지?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러설 곳도 없다. 떠밀리듯 칼을 쥐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턱밑에서 가슴까지 쭉 칼집을 넣었다. 하얀 피부가 갈라지며 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다.
 
우려했던 대로다. 조직을 젖혀내며 한참을 파 내려갔지만, 기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 피가 시야마저 가렸다. 실패를 직감했다. 전공의도 간호사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몇 번 더 집기를 놀리는 사이, 극도의 패닉이 덮쳐왔다. 나는 그 중압감을 못 이기고 칼을 내려놓았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불현듯 다시 환자의 얼굴 쪽으로 뛰어 올라가 입을 열어보려고 낑낑댔다. 절개된 목을 기다랗게 벌려놓은 채로 말이다.
 
“제발 벌어져라. 이가 깨져도 좋으니 제발.”
 
보다 못한 담당의가 나를 말렸다. 진정하고 하던 시술을 마저 해보라고 했다. 이런 경험 많이 해보지 않았느냐며, 자기는 믿는다고 했다.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본인이 환기 마스크로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볼 테니, 차분히 다시 해보라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용기가 났다. 그래 지금 나 말고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포기하지 말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결국 기도를 찾아냈다. 튜브를 밀어 넣고 나서야 모두 안도의 탄성을 질렀다. 환자를 살린 것이다. [사진 pixabay]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결국 기도를 찾아냈다. 튜브를 밀어 넣고 나서야 모두 안도의 탄성을 질렀다. 환자를 살린 것이다. [사진 pixabay]

 
나는 다시 시술을 시작했다. 감각을 끌어올려 한계까지 집중했다. 그렇게 수 분, 마침내 저 깊은 심연에서 가느다란 기도를 찾아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훅을 걸어 필드를 확보했다. 좁은 틈새로 튜브를 밀어 넣는 순간, 모두의 긴 숨이 짧은 관을 통해 새어 나왔다. 됐다. 너나 할 거 없이 탄성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렸다. 환자의 얼굴색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도 같이 안정을 되찾았다.
 
새벽이 깊었지만, 수화기를 들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상황이 너무 급해 동의서를 받지 못했노라고, 일단 시술부터 했노라고 알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환자를 구했노라고 자신 있게 자랑했다. 수화기 너머로 연신 고맙다는 인사가 들려왔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울먹였다.
 
뿌듯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몸도 정신도 많이 소모되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맙단 한마디에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환자의 안정된 숨소리. 그보다 더 큰 보상은 없었다. 나는 방금 한 생명을 구했다. 인간으로서 의사 이보다 보람 있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 후 환자에게 애착이 생겼다. 꼭 살리고 싶었다. 하루하루 정성을 쏟았다.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환자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적적으로 환자를 살렸건만, 의사로서 환자에게 배신감이 드는 일이 생겼다. [사진 photoAC]

기적적으로 환자를 살렸건만, 의사로서 환자에게 배신감이 드는 일이 생겼다. [사진 photoAC]

 
동료들은 환자 상태를 비관적으로 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을 비웃듯 병을 이겨냈다. 결국엔 두 발로 걸어 병실에 올라갔다. 환자가 내과로 옮긴 후에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습관처럼 차트를 펼쳤다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환자가 말할 때마다 목이 아프다고 했나 보다. 보호자가 그걸 꼬투리 잡았다. 예전에 목을 쨌던 시술이 잘못된 게 아니냐며 항의를 했다.
 
동의도 없이 위험한 수술을 해서 합병증이 남은 게 아니냐며, 책임을 운운한 모양이다. 그 과정이 차트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이 아픈 건 시술이 잘못되거나 합병증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기계 호흡기 치료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설령, 시술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더라도 그걸 문제 삼아선 안 되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보따리 요구하는 격일 테니까.
 
죽을 뻔한 걸 밤잠 거르고 힘겹게 살려놨더니. 그땐 고맙다더니 인제 와서 불평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로 나는 환자에게 발길을 끊었다. 마음에서 영원히 그녀를 지웠다. 살렸을 그 당시. 딱 그 순간의 부푼 쾌감만을 의사로서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환자를 살렸어. 그때의 그 전율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사람이 아닌 순간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몇 달 후 환자를 다시 본 건 응급실에서였다. 내 손을 떠난 후에도 많이 좋아졌었나 보다. 병동에서 퇴원하여 정상생활로 돌아갔었나 보다. 그러다가 오늘 또 어딘가 아픈 곳이 생겨서 응급실을 찾은 모양이다. 다행히 목이 아픈 건 아닌듯했다.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을 기억했지만,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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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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