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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관광객 3000만 일본, 식당도 학원도 호텔로 변신 중

중앙일보 2019.03.25 01:30 종합 20면 지면보기
 호텔은 정말 '설마'했던 장소에 있었다. 쇼핑몰 1층을 가로지르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7층에서 문이 열렸고, 그제서야 호텔 로비와 유사한 공간이 나타났다. ‘센추리온 호스텔-나라 헤이조쿄’
 

외국인 관광객 3000만시대
호텔 수요 폭발, 숙박난 상시화
기존 형태 살리는 약식 개조 열풍
내국인은 당일치기 여행 내몰려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을 외부에서 찍은 모습.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미나라'의 옥상(7층) 둥글게 보이는 부분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을 외부에서 찍은 모습.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미나라'의 옥상(7층) 둥글게 보이는 부분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 15일 도쿄로부터 신칸센과 긴테츠(긴키지방 철도)로 이동해 3시간30분만에 도착한 곳은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시 시청사 부근의 대형쇼핑몰 ‘미나라’의 옥상이었다. 1~5층은 수퍼마켓과 레스토랑·잡화점·문구점·가구점·금붕어박물관·오락실 등이 6층엔 비어홀이 입주한 쇼핑몰이다.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의 프런트로 가는 길.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7층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의 프런트로 가는 길.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7층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옥상의 건물은 1989년 회전 레스토랑으로 지어졌다. 나라 시대(710~794년) 7명의 왕이 거주했던 수도(헤이조쿄)의 유서깊은 궁궐터를 회전하며 감상할 수있던 당시엔 꽤 고급 식당이었다.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을 외부에서 찍은 모습.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미나라'의 옥상(7층) 둥글게 보이는 부분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을 외부에서 찍은 모습. 나라시청 부근의 쇼핑몰 '미나라'의 옥상(7층) 둥글게 보이는 부분에 있다. 서승욱 특파원

2000년 영업부진으로 폐점된 뒤 방치되다 지난해 4월 숙박시설로 재탄생했다.  

 
회전 레스토랑의 구조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프런트와 공동 샤워실ㆍ세면장ㆍ화장실ㆍ휴게실이 중앙부에 있고, 45개의 객실이 이를 둥글게 둘러싼 구조였다.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의 내부 모습. 작은 객실 45개가 원형으로 중앙부를 에워싸는 구조다. 서승욱 특파원

과거 회전 레스토랑을 개조한 나라시의 호스텔 '센추리온 호스텔'의 내부 모습. 작은 객실 45개가 원형으로 중앙부를 에워싸는 구조다. 서승욱 특파원

 
하루를 묵는 데 낸 돈은 3600엔(약 3만6000원, 두 사람이 함께 숙박시엔 1인당 2000엔 전후)이었다. 
2층 침대외엔 움직일 공간을 찾기 어려운 1평(3.3㎡) 남짓한 객실, 30년 된 낡은 외관과 달리 리뉴얼된 내부는 고급 호텔 못지 않았다. 
 
이날도 주된 고객은 서양인 바이크족들과 중국인 단체 손님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지난 17일 빗속에도 불구하고 교토의 관광 명소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언덕길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 17일 빗속에도 불구하고 교토의 관광 명소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언덕길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119만명. 교토(京都)·오사카(大阪)·나라 등의 인기 관광지가 몰려있는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숙박난은 이미 일상화됐다. 효고(兵庫)현 기노사키(城崎)온천처럼 6년새 외국인 관광객이 40배로 늘어난 지역에선 6개월전에 숙박 예약이 모두 동이 나는 곳도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17일 교토의 명물 니시키(錦)시장을 가득메운 외국인 관광객들. 서승욱 특파원

지난 17일 교토의 명물 니시키(錦)시장을 가득메운 외국인 관광객들. 서승욱 특파원

 

센추리온 호스텔 관계자는 "회전 레스토랑을 호텔로 바꾼 우리 호텔처럼 기존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공간을 숙박시설로 개조하는 공사가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역 주민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여기저기에 호텔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주변의 카락사 스프링(Karaksa Spring)호텔은 과거 대형 가전판매점이었다. 또 입시학원이나 병원을 숙박시설로 개조한 곳도 있다. 
 
이들 숙박시설의 특징은 기존의 구조를 최대한 살린다는 것이다. 
건물을 통째로 새로 지으려면 1년 이상 걸리는 공사기간을 3~4개월정도로 줄일 수 있다. 
비용도 4분의 1에서 절반 수준이다. 입시학원이나 레스토랑 등 옛 건물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공사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약식 개조 붐에 불을 붙인 것이 지난해 6월 여관업법 개정이다.  객실이 1개뿐이라도 숙박시설 개업이 가능해졌고, 프런트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던 조항도 완화됐다.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공실을 숙박시설로 개조할 수 있게 된 건물주들 사이에선 "구세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파격적인 조치였다. 
 
최근 NHK의 관련 기획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물주는 도쿄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우에노(上野)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빌딩의 소유자였다.  
 
10개에 가까운 단란주점이 그의 건물에 입주해 있지만 직장내 회식 문화가 위축되면서 지금은 30%가 공실이라고 한다.  그는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단란주점 2개 점포를 숙박시설로 개조할 예정인데 지금의 조명과 계산대, 소파와 가구 등을 그대로 살리겠다"고 말했다.  마치 술집에서 숙박하는 듯한 독특한 기분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건물 개조를 넘어 보다 파격적인 숙박 실험이 진행중인 곳도 있다. 어느 골목을 가든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고도 교토다.   
지난 16일 교토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요미즈데라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 인파. 서승욱 특파원

지난 16일 교토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요미즈데라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 인파. 서승욱 특파원

교마치야(京町家)로 불리는 교토식 목조 건물의 외관과 구조를 그대로 살려 개조한 호텔 5개 동을 시내 곳곳에 배치한 분산형 호텔 엔소 안고(ENSO ANGO), 지난해 오픈한 이 곳을 지난 16일 찾았다.
 
교마치야(京町家)로 불리는 교토식 목조 건물을 개조한 호텔 5개 동을 교토 시내 곳곳에 배치한 분산형 호텔 ‘ENSO ANGO’의 한 개동. 서승욱 특파원

교마치야(京町家)로 불리는 교토식 목조 건물을 개조한 호텔 5개 동을 교토 시내 곳곳에 배치한 분산형 호텔 ‘ENSO ANGO’의 한 개동. 서승욱 특파원

각각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장식해 5개 동마다 특색있는 분위기를 냈고, 식당이나 휴게실ㆍ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동 별로 다르게 배치했다.
 
 호텔 이용자들은 자신이 묵고 있는 건물외에 시내에 분산돼 있는 다른 4개 동의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교토 특유의 전통적 정취가 농후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초현대식이다.
 
 객실내에선 전화와 TV가 따로 없이 태블릿 PC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스템이다.물론 이곳의 고객 대부분도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교마치야(京町家)로 불리는 교토식 목조 건물을 개조한 호텔 5개 동을 교토 시내 곳곳에 배치한 분산형 호텔 ‘ENSO ANGO’의 내부의 모습. 서승욱 특파원

교마치야(京町家)로 불리는 교토식 목조 건물을 개조한 호텔 5개 동을 교토 시내 곳곳에 배치한 분산형 호텔 ‘ENSO ANGO’의 내부의 모습. 서승욱 특파원

◇호텔 못잡는 내국인들은 '총알 버스 여행'=관광지 숙박시설을 싹쓸이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습격은 일본 내국인들의 관광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숙박시설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되자, 이들에겐 ‘당일치기 탄환 버스여행’이 인기라고 한다. 총알처럼 일정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예를 들어 도쿄 부근의 간토(關東) 지방을 새벽 2~3시쯤 출발한 버스는 오전 8시쯤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부근의 도요타(豊田)시에 도착한다. 벚꽃 명소 감상과 사진촬영, 주변 오카자키(岡崎)지역의 명물인 핫쵸미소(콩된장)공장 견학과 오찬, 오카자키성 관람과 도요카와이나리(豊川稲荷)신사 참배를 초고속으로 마친 뒤 오후 3시쯤 버스에 다시 올라타 출발지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행선지를 가르쳐 주지 않고 손님들을 버스에 태워 출발하는 소위 ‘미스테리 투어’가 인기를 모으는 것도 숙박난과 무관치 않다.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숙박시설 예약이 상대적으로 쉬운 숨은 명소들을 여행사가 선정해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라ㆍ교토=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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