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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당구장 가자" 다시 큐대 잡은 베이비부머

중앙일보 2019.03.25 01:01 종합 22면 지면보기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2)

하루 당구장 내방객 120만 명, 애호가 1200만 명, 전국 골목 곳곳에 당구장 2만2000개,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 채널…아마 한국은 당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열풍의 주역은 바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다. 대학 시절부터 당구를 쳐온 애호가의  알량한 구력과 지식에 잡생각을 섞어 당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편집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부담 없이 게임할 수 있는 당구장은 항상 활기가 넘친다. 이런 당구 열풍은 우리나라에서만 부는 독특한 현상이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의 한 당구장 모습. 최정동 기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부담 없이 게임할 수 있는 당구장은 항상 활기가 넘친다. 이런 당구 열풍은 우리나라에서만 부는 독특한 현상이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의 한 당구장 모습. 최정동 기자

 
요즘 당구 열풍이 심상치 않다. 목 좋은 당구장에 가면 온종일 만원사례다. 개중엔 30, 40대도 있지만 대다수가 50, 60대다. 특히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이비 부머들이 큐대를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70, 80년대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던 당구장이 2000년대에 들어 PC방에게 밀려나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함께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내가 20대였던 시절이나 지금 불고 있는 당구 열풍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란 사실이 흥미롭고, 또 다른 한편에선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직업이 해외 무역인지라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 나라의 당구 문화를 경험해보려고 당구장을 찾았지만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골목마다 당구장이 들어서고 당구가 인기를 누리는 나라는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의 당구 열풍,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현상
내 짧은 지식으로 당구는 유럽에서 귀족 스포츠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초창기 당구공은 상아였다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당구가 서민은 접근하기 어려운 귀족 스포츠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당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 일본을 통해서가 아닌가 짐작된다. 지금도 애호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일본말 용어로 미루어 볼 때 그렇다. 자료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당시 고관대작들이 즐겼다고 한다. 순종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고.
 
당구의 본고장 유럽은 물론, 이를 우리에게 전파한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당구의 저변 확대가 급속도로 이루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문화사적 지식이 해박하지 못해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기는 어려우나, 인생 한 갑자를 살아오면서 체득한 경험으로 보면 대개 어떤 일이 발생해 유행을 타려면 몇 가지 조건과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그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원래 귀족이나 상류층이 즐기던 고급 취향의 당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70, 80년대 젊은 층이 즐기면서 청년 문화, 오락 문화의 성격으로 리부팅됐다는 점이다. 내가 당구에 입문했던 젊은 시절엔 당구장 손님은 전부 젊은이였고, 나이 드신 분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 여학생들이 학교 앞 여성전용 카페에서 자유롭게 당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00년대 초 여학생들이 학교 앞 여성전용 카페에서 자유롭게 당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우리 부모 세대의 경우 사실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고 고작해야 장기나 바둑 정도였고, 그나마도 직접 두기보다 구경만 하는 훈수꾼이 훨씬 많았다. 70, 80세대의 젊은 시절은 아직 풍요를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500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파죽지세로 5000달러까지 치솟으며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에 겁박당해 답답해하며 젊음을 발산할 공간이 아쉬운 때이기도 했다. 어쩌면 치기와 다소간의 무례함도 수용해줄 수 있는 해방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당구장이었다.
 
사실 내 기억엔 당구장은 다소 시시껄렁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영화 속에 당구장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동네 불량배 내지 불량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물고 당구를 치다가 패싸움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미상불 불명예스럽게도 당구장은 청소년 유해 시설로 지정돼 학교 주변에서 일정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최근에도 여전히 당구장이 유해 시설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당구장에서의 흡연이 금지됐다. 그전까지 담배를 피우며 할 수 있던 유일한 스포츠가 당구였다. 지금도 여전히 술 한잔 먹고 나서도 당구를 칠수 있다. 사실 이런 점에서 당구가 스포츠 인지 놀이 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물론 공식 경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 안 된다. 당구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놀이적 성향이 가미됐고, 지금도 현재도 많은 동호인은 이런 오락적인 부분을 즐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인지 놀이인지 경계 불분명
지난해 말부터 당구장에서의 흡연이 금지됐다. 그전까지 담배를 피우며 할 수 있던 유일한 스포츠가 당구였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부터 당구장에서의 흡연이 금지됐다. 그전까지 담배를 피우며 할 수 있던 유일한 스포츠가 당구였다. [연합뉴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이러저러한 연유로 B급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 역설적으로 대중화의 물꼬를 튼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 은퇴 세대는 친구의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기껏해야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들이 대부분이다. 학창 시절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보낸 직장에서 만난 이들 중엔 동창보다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이 분명 있을 터인데 웬일인지 그들 중 은퇴 후까지 친교가 계속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먹고 사느라, 가족 부양하느라 힘들게 살았던 그 시기의 직장생활은 경쟁의 굴레를 벗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료와의 만남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협력과 친목보다는 경쟁과 손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짙었다.
 
이제 은퇴하고 나서는 그런 이해관계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의 친구에게 격식과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으랴. 그러한 친구들과 만날 때 다소의 무례함과 치기는 오히려 양념 역할을 해줄 터. 당구는 이런 욕구에 딱 부응하는 수단이다.
 
깨알 당구 팁
한국에만 있는 당구대 ‘중대’, 국제규격보다 작아
캐롬 볼의 당구대 규격은 일반 동호인이 즐기는 국내식 중대(가로 1244mm, 세로 2448mm)와 공식 경기에 사용하는 국제식 대대 (가로 1422mm, 세로 2844mm)가 있다. 일반적으로 중대라고 알려진 당구대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테이블이다. 
 
당구대의 바닥은 석판으로 돼 있고, 그 위에 천을 씌운 다음 레일을 설치한다. 레일에는 헤드 쿠션이라는 고탄성 고무가 붙어 있어 공의 반발력을 높여준다. 당구대 설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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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근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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