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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주말에 뭘 하셨나요?

중앙일보 2019.03.25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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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입학한 아이의 학교에서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학부모들이 팀을 만들어 학년별로 자웅을 겨루는 리그전의 개막식이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맺어진 인연이지만 오히려 부모들이 더 즐거워하며 봄볕이 가득한 휴일의 낮을 즐겼습니다. 등 번호와 닉네임이 새겨진 미리 맞춘 축구복을 아래위로 갖춰 입고 축구화를 꺼내 신고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동네축구일지라도 복장과 장비만은 유럽 프로리그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흙투성이 운동장에서, 늘 신던 운동화만으로 축구공 하나에 수십명이 달려들었던 기억과 비교해 보면 그토록 열망했던 선진국의 삶이 현실로 다가온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달 등산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챙긴 것 또한 방수가 된다는 전문 등산화였습니다. 엄청나게 가벼워 간편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다운패딩과 흔들리지 않도록 등에 딱 맞춰 준다는 산악용 배낭, 하중을 나누어주는 등산용 스틱, 땀을 내보내고 잘 늘어나는 등산용 바지와 바람막이 역시 산에 오르기 위해선 필수적인 물건들이라 들었기에 구매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산에 다녀온 후에도 사야 할 물건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되자 등산이 비용이 들지 않아 좋은 취미라는 예전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빅데이터 3/25

빅데이터 3/25

하나의 취미를 가질 때마다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선 헬멧과 기능성 운동복이, 캠핑은 텐트부터 취사도구를 넘어 심지어 SUV 자동차까지도 필요하다 합니다. 섬세하게 벼려진 우리의 감각을 맞추기 위해 때와 장소에 맞춰 필요해진 물건들은 예전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여유는 비용과 시간 모두가 허락되어야 하기에 삶의 풍요로움과 궤를 같이합니다.
 
산에 오를 때 아직 채 단련되지 않은 근육을 보호해주는 무릎보호대와 거친 나무들로부터 손을 감싸주는 등산용 장갑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등산을 마친 후 등산용품 전문점에서 잔뜩 산 물건들 중 많은 것들은 다음번 산행에서 곧바로 후회로 다가왔습니다. 오랜 시간 더운물을 유지해 준다는 보온병과 히말라야를 올라갈 만한 아이젠, 그리고 따뜻한 밥을 위한 진공 보온 도시락은 초보자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배낭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긴 해도 처음에 산 가벼운 물건들만으로 그다음 산행의 준비를 하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문적인 장비보다 오르는 이의 체력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저 먹고 사는 것만으로 족했던 예전에 비해 이젠 살며 갖춰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등산용품 전문점의 노련한 판매사원이나 함께 산에 오르는 동료와 같이 그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수요가 아니라 내가 그 필요를 진정으로 느끼고 원하느냐는 것이지요. 주변의 시선이나 잣대에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서양 철학자의 통찰이 떠오릅니다. 진정한 선진국의 삶은 내 기준에 맞춰 충실히 풍요롭게 사는 삶입니다. 단순히 유행을 좇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겉보기 풍요가 의미 없음을 아는 것에서부터 외양은 화려하더라도 속은 뭘 채웠는지 모르는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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