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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직권남용

중앙일보 2019.03.25 00:07 종합 34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형법 123조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명시하고 있다. 위반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는 중죄다. 공무원에게만 적용된다.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걸리는 죄명이다. 오늘 구속 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서게 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한테 씌어진 혐의가 바로 형법 123조다. 장관의 권력을 이용해 임기가 보장된 환경부 산하단체 임원들에게 강제로 사표를 내게 해 그들의 권리행사를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장관 출신에 대해 검찰이 최초로 구속 영장을 청구한 사건인 만큼 정권은 신경이 곤두선 것 같다.
 

살아있는 권력 겨냥한 동부지검
참모들이 무죄면 대통령이 책임
원안위원 임명 거부도 수사해야

야당 세력으로부터 권력의 사냥개 소리나 듣던 검찰이 이번엔 살아 있는 권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신기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배경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해도 수사 주체인 서울동부지검이 김은경 전 장관의 배후 혹은 공범 관계로 의심받고 있는 청와대의 진실을 성역없이 파헤친다면 그 자체로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수치심도 없는지 검찰이 반대 세력을 청산해 줄 때는 잘한다고 격려하더니 자기들에게 공격 자세를 보이자 표변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검찰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며 법원에 노골적으로 영장 기각을 압박했다. 반대파에겐 법의 정의를, 우리 편한테는 법의 자비를 베풀라는 요구다.
 
그런데 과거 정부의 경우를 냉정하게 따져 보면 홍익표·김의겸 대변인은 제 발등 찍는 발언을 했다. 직권남용이라는 죄는 2017~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국정농단 재판에서 유명해졌다. 재임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김종덕 문체부 장관 등을 통해 노태강 국장(현 정부에서 2차관으로 승진)을 ‘나쁜 사람’이라며 쫓아내라고 지시했다든가 우병우 민정수석으로 하여금 장관한테 문체부 국·과장 6명을 좌천시키라고 한 일은 유죄로 판정 났다. 이 사례는 대통령이 모든 공직자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행사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대통령이 몸소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남겼다. 인사에 관한 대통령의 지시를 중간에서 그저 집행하기만 한 김종덕 장관이나 우병우 수석은 인사 남용 부분에서 무죄가 나왔다. 뒤집어 말하면 인사권 남용죄의 책임이 장관이나 수석에 있으면 대통령은 무죄이고, 반대로 장관이나 수석이 무죄이면 대통령이 최종 인사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부 산하단체 임원들을 동향 파악이나 압력 행사로 쫓아낸 직권남용죄의 실제 책임자가 환경부 장관이냐 청와대의 조현옥 인사수석이냐 아니면 또 다른 실세 그룹이냐가 명백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엔 조현옥 수석 바로 아래인 신미숙 비서관의 직권남용 혐의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고 한다. 신 비서관이 정부 부처의 예민한 인사를 처리하면서 조 수석의 지시를 받지 않고 움직이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검찰의 칼끝이 최소한 조현옥 수석까지 겨냥하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조 수석이 곧 청와대를 관둔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의 진퇴가 수사에 영향을 줘선 안 될 것이다.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만 수사를 진행해 문 대통령의 인사권이 어떤 순서와 절차를 밟아 누구에 의해 실질적으로 행사됐는지 책임과 한계를 가려야 한다. 조현옥의 인사수석실은 최근 국회가 표결로 확정한 원전안전위원 2명에 대한 임명을 거부함으로써 문 대통령을 3권분립 파괴자로 만들어 버렸다. 조 수석이 원안위원 2명 거부건을 사전에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도 차제에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대통령도 모르게 뒤죽박죽 사용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서울동부지검 수사가 길을 잃지 않길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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