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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 끼고 패션쇼 오른 한민수 선수…"당신이 바로 예술"

중앙일보 2019.03.24 16:48
지난 3월 24일 오후 3시30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의족을 한 남자 모델이 등장하자 방청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보라색 재킷에 반바지 차림, 목에는 메달을 걸고, 양손엔 아이스하키 헬멧과 스틱을 든 이 남자는 지난해 평창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아이스하키 선수 한민수(49)였다.   
한민수 선수가 서울패션위크 2019 가을겨울시즌 '그리디어스' 패션쇼에 모델로 섰다. 왼쪽 의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반바지를 입고 런웨이를 걸은 그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포즈를 잡는 등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지난해 평창 패럴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동메달을 따고 은퇴해 '평창 패럴림픽의 영웅'이라 불렸다. [사진 서울패션위크]

한민수 선수가 서울패션위크 2019 가을겨울시즌 '그리디어스' 패션쇼에 모델로 섰다. 왼쪽 의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반바지를 입고 런웨이를 걸은 그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포즈를 잡는 등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지난해 평창 패럴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동메달을 따고 은퇴해 '평창 패럴림픽의 영웅'이라 불렸다. [사진 서울패션위크]

 
그를 패션 무대 위 모델로 기용한 건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이끌고 있는 박윤희 디자이너다. 박 디자이너는 지난 시즌 컬렉션 쇼에서 모델들의 손에 텀블러를 들려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그는 “이번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융합과 소통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한민수 선수와 함께 쇼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박 디자이너와 한민수 선수는 배우 신현준을 주축으로 한 환경 보호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첫 모임에서 어린 시절 침을 잘못 맞아 한쪽 다리를 잃게 됐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접지 않고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게 선수 생활을 해온 한 선수에게 박 디자이너는 홀딱 반해 버렸단다. 그는 “사람이 바로 아트(예술)다. 저마다 그만이 갖고 있는 스토리와 이를 통해 보이는 나름의 멋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민수 선수는 보통 사람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왔고 그만큼 더 감동을 주는 아트라고 생각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디자이너는 그 자리에서 그리디어스의 모델로 서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한 선수는 "난생 처음해보는 패션모델이 부담스럽긴했지만, '못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삶은 도전에서 도전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를 통해 장애인 아이스하키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선수의 패션모델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관객석엔 서보라미 현 크로스컨트리 선수, 수영선수 출신의 임우근씨, 체조선수 출신의 김소영씨 등이 참석했다. 임씨는 "패션 모델 데뷔가 쑥스러운지 정말 친한 지인 몇 명 외에는 패션쇼 얘기를 알리지 않았다"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무대가 끝난 후 한 선수는 "올림픽보다 더 긴장했다"며 "만약 의족이 보이지 않았으면 걸음이 어색했을 거다. 의족을 감추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강박에서 자유로워졌고 최선을 다해 걸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리디어스 쇼에 등장한 곽윤기 선수.

그리디어스 쇼에 등장한 곽윤기 선수.

이번 쇼엔 또 한 명의 동계올림픽 스타가 함께 무대에 섰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던 곽윤기 쇼트트랙 선수다. 그는 박 디자이너가 직접 페인팅한 청재킷에 스케이트를 가방처럼 등에 걸친 채 무대를 걸었다. 곽 선수는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 “키가 160cm로 전 세계 쇼트트랙 선수 중에서 제일 단신”이라고 밝힐 정도로 작은 키였지만, 평균 180cm가 넘는 장신의 모델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파워 워킹을 선보였다.   
 
3월 23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2019년 서울패션위크에서 '그리디어스'를 이끌고 있는 박윤희 디자이너가 자신의 부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서울패션위크 기간 내내 자신의 브랜드 부스에 직접 나와 바이어들을 맞았다. 윤경희 기자

3월 23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2019년 서울패션위크에서 '그리디어스'를 이끌고 있는 박윤희 디자이너가 자신의 부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서울패션위크 기간 내내 자신의 브랜드 부스에 직접 나와 바이어들을 맞았다. 윤경희 기자

박윤희 디자이너는 국내 브랜드 오브제와 한섬에서 경력을 쌓고 2012년 자신의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만들며 미국 뉴욕 등 해외무대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세계 40여 개국에 진출했고, 2014년 팝스타 비욘세가 그의 옷을 입어 화제가 됐다. 브랜드명 그리디어스(greedilous)는 ‘욕심 많은(greedy)’과 ‘환상적(fabulous)’이라는 영어 단어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성의 욕심과 이를 멋지게 표출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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