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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게임에 사랑과 배신,질투 입히는 '게임시나리오 작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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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사랑과 배신,질투 입히는 '게임시나리오 작가' 세계

중앙일보 2019.03.24 05:00
 
 
김호식 넥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인터뷰 
 
“하하하! 제법이로구나 막내야!” 이곳은 무림. 주인공의 사형인 ‘무성’이 내뱉는 말이다. 평화롭게 수련에 매진해오던 ‘홍문파’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힘을 얻기 위해 악행을 일삼는 무리와 사형의 배신으로 홍문파는 와해했다. 친형처럼 따랐던 사형은 이후 주인공의 가장 큰 적이 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게임에도 사랑과 배신, 시기와 질투 등이 넘쳐난다. 많게는 수십만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MMORPG(다중 접속 역할 게임)의 스토리 라인은 웬만한 영화 못지않다. 탄탄한 완성도 덕에 게임 유저들은 게임 속 대사를 현실에서도 즐겨 쓴다.  
 
영화처럼 게임에도 시나리오가 있다
게임 시나리오 관련 아이디어를 자신의 다이어리에 적고있는 김호식 디렉터. 머리 속에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를 기록해 둔다. [사진 넥슨]

게임 시나리오 관련 아이디어를 자신의 다이어리에 적고있는 김호식 디렉터. 머리 속에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를 기록해 둔다. [사진 넥슨]

 
게임 속 우주를 만드는 이가 바로 ‘게임 시나리오’ 작가다. 영화처럼 게임에도 시나리오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넥슨의 김호식(45·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국내 게임 시나리오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에 매료돼 애니메이션 관련 분야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결국엔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넥슨은 물론 엔씨소프트와 웹젠 등 국내 주요 게임 회사를 두루 거쳤다. 덕분에 블레이드 앤 소울(엔씨소프트), 제라(넥슨), 헉슬리(웹젠) 등 국내 주요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엔 넥슨의 1인칭 슈팅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제작에 관여했다. 그가 참여한 게임들에 들인 각종 개발 비용을 합치면 10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가 자신에 대해 “나름대로 1000억원 대 시나리오 작가”라고 말하는 이유다. 20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넥슨코리아 본사에서 김 디렉터를 만났다. 
 
 
영화가 선(線)이라면, 게임은 면(面)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는 닮은 듯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가 시나리오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게임 시나리오는 큰 이야기의 얼개나 캐릭터가 만들어진 뒤 시나리오 작가에게 주어진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작품에 선행하고, 게임은 시나리오가 게임 개발의 뒤를 따른다.”
 
김 디렉터가 꼽은 영화 시나리오와 게임 시나리오 간 가장 큰 차이다. 그 대신 게임 시나리오 작가에는 더 많은 디테일이 요구된다. 게임 캐릭터가 왜 변신하는지, 등장한 아이템의 명칭이 무엇인지까지도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붙인다. 그는 이를 두고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구슬을 꿰는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게임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해외에서는 A4 용지로 3000매 분량의 시나리오까지 있다고 한다. 그만큼 디테일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다르다. 영화 시나리오가 시간을 따라 진행되는 선(線)형 작업이라면, 게임 시나리오는 같은 순간이라도 여러 가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다면적인 작업이다. 게이머의 플레이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스토리 전개 양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는 “왼쪽으로 가면 적군이, 오른쪽으로 가면 아군이 나오는 등 그때그때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 용어로는 ‘패치(덧댐, 개선작업 등의 의미)’마다 다르다. 그는 “영화 관람객은 수동적이지만, 게임 유저는 능동적”이라고도 했다.
  
폴리 아티스트
 
 
‘게임 속 우주를 만들지만, 외롭다’  
‘우주를 만든다’는 사명감에 일하지만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외로운 직업이다. 우선 수가 적다. 대작 게임 하나에 200명 정도의 개발자가 투입된다면, 이중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1~2명 정도다. 게다가 다른 개발 팀원들과 일하는 방식이 정반대다. 게임 캐릭터와 큰 얼개가 나온 다음 그에 대한 콘텐트를 채워 넣는 작업을 하다 보니 남들이 바쁠 땐 한가하고,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바쁠 땐 다른 개발자들이 한가하다. 
 
글솜씨가 좋다고 반드시 성공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몇 해 전 유명 판타지 소설 작가와 손을 잡고 내놓은 대작 게임의 흥행 성적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글솜씨 못지않게 게임개발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 전개방식 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해서다.
 
김 디렉터가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은 뭘까. 김 디렉터는 “우선 게임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게임 시나리오도 쓸 수 있단 의미에서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좋은 만화가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한해 100편 영화 보며 아이디어 쌓아
게임 시나리오 관련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책과 영화를 보는 건 기본. 김호식 디렉터는 한해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본다. [사진 넥슨]

게임 시나리오 관련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책과 영화를 보는 건 기본. 김호식 디렉터는 한해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본다. [사진 넥슨]

 
스토리 관련 아이디어는 일상생활에서 주로 얻는다. 관련 장르에 대한 자료 조사는 기본. 여기에 한해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며 아이디어를 쌓아둔다. 게임 트렌드가 비교적 스토리 라인이 긴 MMORPG에서 상대적으로 간단한 모바일 게임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게임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그는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게임 역시 분명 ‘트랜스 미디어(Trans Mediaㆍ다양한 플랫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 중 하나”라며 “스토리가 좋은 게임을 만들어서 국내 게임 지적 재산권(IP)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판교=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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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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