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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4바퀴, 에베레스트 113번···자전거 달려야 사는 남자

중앙일보 2019.03.23 11:00
 
 
 
장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란도너 박종하 씨가 대회 참가용 자전거, 휴대 물품과 함께 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란도너 박종하 씨가 대회 참가용 자전거, 휴대 물품과 함께 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종하’ 석 자만으로 검색하면 그를 쉽사리 찾지 못한다.
그 앞에 ‘란도너’란 석 자를 붙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에 관한 소개가 줄줄이 나타난다.
 
 
도대체 ‘란도너’란 무엇일까?
그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최소 200㎞에서 수천㎞까지 비경쟁 장거리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대회는 프랑스에서 시작됐는데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의 도움과 동력 없이 자력으로만 가면 되는 대회입니다.
중간 지점마다 스탬프 찍으며 국토 종주하는 대회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최소 거리가 200㎞다.
게다가 수천㎞를 자전거로만 달린다.
산길도 마다치 않는다.
그러니 끌고 메고 가야 할 때도 있다.
풍찬노숙도 다반사다.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다.
호구지책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는 왜 스스로 험난한 길을 가는 걸까.
그것이 궁금하여 눕터뷰를 요청했다.
 
 
 
 
장거리 대회 참가를 위한 필요 물품이 장착된 자전거. 이 상태로 10여일 동안 달리기도 한다.

장거리 대회 참가를 위한 필요 물품이 장착된 자전거. 이 상태로 10여일 동안 달리기도 한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위해 그가 타고 온 자전거다.
딱 저 상태로 200㎞ 내지는 수천㎞를 달린다고 했다.
10여일 이상 자고 먹으며 수천㎞를 달리자면 엄청난 물품이 필요할 터다.
어림잡아도 자전거 수리 장비, 취침 도구, 방한용품, 비상식량, 구급약 등이 준비돼야 하는데. 
달랑 자전거 하나로 온 게다.
분명 미리 준비해오라 일렀건만 달랑 빈 몸에 자전거 한 대로 왔다.
 
 
 생존 물품은 어쩌고 달랑 자전거 하나로 왔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가 그냥 씩 웃었다.
그러며 자전거에 달린 가방에서 하나씩 꺼냈다.
주섬주섬 꺼내는 데 온갖 게 다 나온다.
 
돌돌 말린 것을 펼치니 방한복이고 침낭이다.
파우치를 펼치니 각종 공구와 스페어 튜브가 있다.
비상식량이며 보조배터리, 랜턴, 잠금장치 등이 줄줄이 나왔다.
심지어 정수기까지 있다.
바닥에 펼쳐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자전거 하나로 몇 날 며칠 세상을 주유할 수 있는 것,  이 물건들 덕이다.
 
 
 
때론 헬맷에 부착한 랜턴 하나로 낯선 밤길을 달려야 하는게 란도너의 삶이다.

때론 헬맷에 부착한 랜턴 하나로 낯선 밤길을 달려야 하는게 란도너의 삶이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탔습니까?”
 
“군 제대 후 2004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했습니다.
동호회 가입하여 5개월 만에 서울에서 대구까지 따라나섰고요.  
남들은 장비 다 갖췄는데, 저는 헬멧, 반바지 평상복에 운동화 신고 320㎞를 탔습니다.
참 무모했습니다.  
갈 때는 이 짓을 왜 하나 했는데, 돌아오고 나니 또 가고 싶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란도너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2010년부터 클럽활동 하면서 제대로 타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레이싱 위주로 팀 활동하며 꾸준히 많이 탔죠.
장거리를 남들보다 잘 타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여행처럼 다니는 개념이라 2015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혼자 여행처럼 다니는 개념’ 때문에 란도너를 시작했다고 했다.
 지독히 내성적인 그의 성격이 자신만의 길을 찾게 한 셈이었다.
 
 
 
길이 끊어지거나, 길이 없는 곳에선 자전거를 들고 이동해야한다.

길이 끊어지거나, 길이 없는 곳에선 자전거를 들고 이동해야한다.

 
“1년에 얼마나 타십니까?”
 
“많이 탈 땐 1년에 2만 7000㎞ 탔습니다.  
평지보다 산이 힘든데요, 총 상승 고도는 30만m 정도 됩니다.“
 
 2만7000㎞, 어림조차 쉽지 않은 거리다.
 웬만한 사람의 차량 주행거리보다 먼 거리지 않은가.

 
 
“지금까지 탄 누적 거리는 얼마나 되죠?”
 
“2013년 말부터 기록한 건데 10만㎞가 넘고요.
기록하기 전에 것까지 따지면 15만㎞는 당연히 넘을 겁니다.
상승 고도는 100만m는 족히 넘습니다.”
 
15만㎞는 서울-부산(400㎞)을 375번 탄 거리고, 지구를 거의 4바퀴(1바퀴=적도 기준 4만129㎞) 돈 거리다.
고도 100만m는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를 113번가량 오른 셈이 된다. 
 
과연 이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지난해 박종하 씨가 달렸던 '재팬 오디세이' 대회 GPS 궤적. 도쿄를 출발해 다시 도쿄로 돌아오는 2800km 여정을 한 눈에 보여준다. 박 씨는 9일 13시간 30분에 완주해 3등으로 피니시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지난해 박종하 씨가 달렸던 '재팬 오디세이' 대회 GPS 궤적. 도쿄를 출발해 다시 도쿄로 돌아오는 2800km 여정을 한 눈에 보여준다. 박 씨는 9일 13시간 30분에 완주해 3등으로 피니시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딩은 뭡니까?“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재팬 오디세이'라는 대회에 참가했는데요. 
총 2800㎞, 상승고도 4만m의 거리를 10일 안에 달려야 하는 대회였습니다.
5일 정도 비박 노숙을 하며 완주했습니다.
영국, 캐나다 등 10여 개국에서 온 30명의 라이더가 참가했는데
7명만 완주를 했고 저는 3위로 들어왔습니다.”
 
 
 
일본 대회 중, 480km 를 남겨준 지점, 박종하씨는 '이제 끝이 보인다'는 글을 인스타 그램에 남겼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일본 대회 중, 480km 를 남겨준 지점, 박종하씨는 '이제 끝이 보인다'는 글을 인스타 그램에 남겼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처음엔 이 엄청난 거리를 언제 끝내나 막막했었는데, 
타다 보니 끝났고, 
끝나고 보니 벌써 끝났네 하는 생각이 들며 아쉽더라고요. 
솔직히 더 타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편의점. 라이딩 도중 식사와 스마트 기기 충전 등을 해결하는 곳이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일본의 편의점. 라이딩 도중 식사와 스마트 기기 충전 등을 해결하는 곳이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그 엄청난 거리를 타고도 더 타고 싶었다고요?”
 
“사실 왼쪽 손목이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변속이나 브레이크를 잡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노면의 충격을 계속 받으니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다 재미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일본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며 온갖 음식을 다 먹어보고요. 하하“
 
 
 
박씨는 장거리 여행의 매력이 아름다운 풍경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박씨는 장거리 여행의 매력이 아름다운 풍경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제일 좋은 점이 뭔가요?”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완주한다는 생각으로 타면 경치도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 빠르게 탈 땐 안 보이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가 된 거죠.”
 
 
 
일본 대회 중, 길을 잘못 택하여 접어든 막다른 길, 끌고 메고 1시간 30분을 허비해야 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일본 대회 중, 길을 잘못 택하여 접어든 막다른 길, 끌고 메고 1시간 30분을 허비해야 했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길 없는 길로 들어 낭패도 겪는다면서요?”
 
“우리 세계 말로 ‘끌바', '멜바’라고 하는데요.
이럴 땐 자전거를 끌고, 메고서 고비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3시간 노숙, 노루 울음과 트럭 소리에 설잠을 잤다고 밝혔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버스 정류장에서 3시간 노숙, 노루 울음과 트럭 소리에 설잠을 잤다고 밝혔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비용은 많이 들지 않습니까?”
 
“참가비가 그리 비싼 편이 아닙니다. 30만원 정도입니다.
항공료 외엔 먹는 게 대부분인데요. 
숙박비가 거의 들지 않으니 큰돈 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만 따지면 12일 동안 120만원 정도 사용했습니다.“
 
 
 
박종하 씨는 2017년 하루 동안 1200km를 달리는 브레베를 완주했다 .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박종하 씨는 2017년 하루 동안 1200km를 달리는 브레베를 완주했다 .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옷 광고 모델도 했다던데 모델료로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모델료는 없습니다. 협찬이 들어와서 입고 다닌 것뿐입니다.  
오늘은 서울, 다음 날은 광주, 또 다음 날은 부산으로 주야장천 다니니
헬멧, 의류, 신발을 지원해주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현장 일하면서 자전거를 예전만큼 못 탑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만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전기와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이 불규칙하니 예전만큼 많이 못 타고, 그래서 지원을 그만 받겠다고 한 게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기회가 되면 1년에 한 번씩이라도 해외대회를 나가고 싶습니다.
유럽횡단 레이스나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키르기스스탄 1700km 참가하고픈 희망을 박씨가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키르기스스탄 1700km 참가하고픈 희망을 박씨가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가 소개되어 있었다.
1700㎞의 산악지형을 달리는, 세계 최고 난도 대회 중 하나다. 
누구나 완주할 수 없는 대회이기에 꼭 참가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광주 600 km 브뢰베 무인 스템프.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광주 600 km 브뢰베 무인 스템프.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위해 입문 과정을 알려 주십시오”
 
“'한국 란도너스'에 가입하면 회원 번호가 부여됩니다.
100㎞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웬만하면 200㎞ 정도는 완주할 수 있습니다.
200㎞가 기본입니다.
가입하면 브레베(장거리 경주대회) 신청하는 날이 있습니다.
신청해서 완주하면 됩니다.
그다음 300㎞, 400㎞, 600㎞ 브레베를 완주하면 ‘슈퍼란도너’가 됩니다.
 
‘슈퍼란도너’가 되면 1200㎞나, 
SBS이라고 해서 서울-부산-서울을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슈퍼란도너’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올해 프랑스에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1200km 브레베가 있습니다.
PBP라고 부르는데 파리-브레스트-파리를 달립니다.
란도너들의 올림픽 개념이죠. 전 세계에서 5000명가량 참가합니다.
슈퍼란도너가 되어야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저도 참가신청을 해 둔 상태입니다.“
 
 
대회에 참가하고 나면 헬멧을 삐쳐나온 머리가 주뼜 서있게 된다,

대회에 참가하고 나면 헬멧을 삐쳐나온 머리가 주뼜 서있게 된다,

 
답을 하는데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시시때때로 웃는 표정이 참 순박(?)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온 탓에 푹 눌러진 머리 때문에 더 그리 보였다.
 
 
스튜디오에 온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거울을 보게 마련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다듬는 건 누구나 다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눌러졌으면 빗질로 되살리기 마련일 터다.
 
그런데 그는 눌린 머리 그대로 사진을 찍고,  
아랑곳없이 자전거 얘기에만 열과 성을 다할 뿐이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관해 물었다.
“머리카락이 눌려 있는데 항상 그런가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합 나가면 더해요.  
 완전히 머리가 삐죽 섭니다. 재미 삼아 찍은 게 있습니다.
한번 보실래요?“
 
 
라이딩을 끝낸 후 박씨의 헤어 스타일. 헬멧에 눌러진 부분과 삐쳐 나온 부분으로 인해 독특한 스타일이 나타난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라이딩을 끝낸 후 박씨의 헤어 스타일. 헬멧에 눌러진 부분과 삐쳐 나온 부분으로 인해 독특한 스타일이 나타난다. [사진 박종하 인스타그램]

 
SNS를 찾아 그가 보여준 사진들이다.
난생처음 보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삐죽삐죽 선 머리카락,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이상한 머리였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 사진들을 통해 란도너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에게 자전거 두바퀴는 삶이며 꿈이다.

그에게 자전거 두바퀴는 삶이며 꿈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며 그에게 말했다.
“기사 쓰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 드려도 될까요?.”
 
“나흘 후 네팔에 갑니다. 아마 통화가 불가능할 겁니다. 그전에 전화 주십시오.”
 
“자전거 타러 가시나요?”
 
“이번엔 아닙니다. 트래킹입니다. 고산병 테스트 겸, 사전 점검차 가는 겁니다.”
 
 
자전거가 아니라 두 발로 걷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발길,  
그의 시간,  
그의 삶은 두 바퀴에 자전거에만 맞춰져 있었다.
 
사진·글·동영상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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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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