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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김혜자의 또 다른 얼굴···"매일 죽음을 준비합니다"

중앙일보 2019.03.23 10:00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배우 김혜자(78)는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의 열연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한 의미를 세상사람들에게 일깨워줬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70대 노인 혜자의 시선에서 되돌아본 그의 삶은 때론 행복하기도, 때론 불행하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한 편의 드라마같은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30년 가까이 전세계 구호활동 "진정한 나를 찾았다"
'국민엄마' 외에 '전세계 빈곤아동의 엄마'로도 불려
"임종때 돈 명예 아닌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평가받고파"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하고 싶어"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던진 "오늘을 살아가라"는 혜자의 충고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찬란한 선물이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혜자의 감동적인 마지막 내레이션은 어찌 보면 삶을 바라보는 인간 김혜자의 따뜻한 시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사진 JTBC]

 
"저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며 삽니다. 영정사진도 준비해 놓았죠. 임종의 순간에 얼마나 소유했고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평가받고 싶어요."  
 
2011년 '제30회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한 뒤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혜자가 한 말이다. 그는 처음엔 수상을 거절하려 했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는다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을 고쳐먹은 건, 상금 3000만원이란 크나큰 유혹 때문이었다.  
 
"이 돈으로 케냐 소말리아 난민촌에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내전과 기근을 피해 목숨 걸고 난민촌에 왔지만 정작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영양죽을 먹이겠습니다. 나의 힘 되신 여호와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992년 여름 민간구호단체 월드비전의 권유로 "여행 삼아" 간 에티오피아에서 지옥보다 더 비참한 현지인들의 삶을 목격한 충격은 김혜자의 삶을 봉사의 길로 이끌었다. 이후 비싼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나, 비싼 핸드백을 사려 할 때 '이 돈이면 500명의 아이들을 하루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 이 돈이면 10명의 아이가 1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는데…'라며 계산하는 버릇이 생긴 그에게 전세계 각지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는 일은 또 다른 일상이 돼버렸다.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배우 김혜자는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일하는 그는 전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10여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꽃으로도 때리지 말라』(2004)의 인세 전액과 CF 출연료, 방송 출연료를 기부하는 등 30년 가까이 자선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현재 100여명의 해외아동들과 결연을 맺고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김혜자의 책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태백 꽃때말공부방은 2005년 세워져 태백지역 아동들의 안전한 교육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했다. 김혜자에게 '국민엄마' 외에 '전세계 빈곤아동의 엄마'라는 또 다른 별명이 붙은 이유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그는 자선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굉장히 화려한 직업입니다. 나의 진정한 내면이 아닌, 어떠한 겉모습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연기에서 찾지 못했던 '진정한 나'를 봉사와 나눔을 통해 찾게 됐습니다. 내가 뒤늦게 발견한 삶, 그것이야말로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이 더 행복해졌음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삶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내가 만난 가난하지만 영혼이 아름다운 이들의 눈망울이 고스란히 제 마음속에 담겨지게 됐습니다. 내 삶은 변했습니다. 더 많이 웃게 됐고, 홀로 있을 때도 진정한 의미에서 나 홀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게 운동은 아프리카 봉사인 것 같아요. 거기 가면 내가 서울에서 한 고민들은 하나같이 쓰레기로 느껴져요. 깨끗이 씻겨져 오는 느낌이 들어요. 가서는 가슴 아파 울지만 올 때는 좋은 생각만 하다 오게 된답니다. 사실 봉사라는 말도 부끄러워요. 그건 봉사가 아닌 나를 구원하러 가는 거니까요."  
 
 김혜자는 2015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매달 아프리카 아이들 103명에게 3만원씩 보내는 것도 2019년 치까지 미리 내놓았다"고 했다. "제가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돈이 생기면 아이들 것부터 챙겨둬요. 그게 제일 걱정되니까."   
 
 '전세계 빈곤아동의 엄마'로서 김혜자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일까. "만일 내가 비라면 물이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옷과 음식이라면 세상의 헐벗고 배고픈 이들에게 제일 먼저 갈 겁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그의 태도는 연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오랫동안 출연했던 조미료 광고의 찰진 명대사이자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도 등장했던 "그래, 이맛이야!"는 갈수록 섬세해지고 울림이 커지는 56년 연기 내공을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영화 '마더'에 출연한 배우 김혜자 [영화사 제공]

영화 '마더'에 출연한 배우 김혜자 [영화사 제공]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에서 부부로 나오는 배우 김혜자의 연극 대본. 곳곳에 연기 포인트를 적어놓았다. "못하는 사람일수록 대본이 지저분하다"며 겸손해했다. [중앙포토]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에서 부부로 나오는 배우 김혜자의 연극 대본. 곳곳에 연기 포인트를 적어놓았다. "못하는 사람일수록 대본이 지저분하다"며 겸손해했다. [중앙포토]

  
'사랑이 뭐길래' '전원일기'의 따스한 엄마 말고는 거기서 거기인 일상적인 엄마만 수도 없이 해, 연기는 물론 삶에서도 지쳐있을 때 그는 과감히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택했다.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게"라는 대사에 응축된 동물적 모성은 '국민엄마' 이미지에 묶여있던 김혜자의 연기 인생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한 그의 행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그는 2014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저의 삶 자체지요. 실낱 같더라도 사람들에게 아직은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작품도 그런 관점에서 골라요."
 
 tvN '디어 마이 프렌즈', JTBC '눈이 부시게' 등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을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그의 명품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작품을 고르는 안목과 연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변함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가 말한 '희망'이란 단어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감동적인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굳이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 배우 김혜자, 아니 자연인 김혜자가 살아온 아름다운 삶의 궤적처럼 말이다. 연기를 통해서든 자선활동을 통해서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려 노력하는 김혜자의 삶은 눈부심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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