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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펑펑 쏟은 따듯한 소설

중앙선데이 2019.03.23 00:20 628호 21면 지면보기
황소자리's pick
오카피를 보았다

오카피를 보았다

오카피를 보았다
마리아나 레키 지음
한미희 옮김
 
전속력으로 달리던 기차의 왼쪽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문에 등을 기댄 채 맞은편 루이제를 바라보던 마르틴은 차창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바윗장 같은 고통이 연약한 삶을 덮칠 때, 할 수 있는 건 다만 눈을 감고 외면하는 일이다. 친구 마르틴을 땅에 묻던 날, 열 살 루이제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할머니 젤마의 등에 매달려 사흘 내리 잠을 자던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할머니,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루이제, 사랑하는 아가. 네가 잠에서 다시 깨어나기로 마음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지, 너는 모를 게다.” 젤마 곁에서 이렇게 말하는 늙은 안경사는 울고 있었다.
 
가까스로 눈을 떠 둘러본 세상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아들의 아픔에는 속수무책인 젤마와, 그런 젤마를 짝사랑하다 마음의 병을 얻은 안경사. 미신에 기대 하루하루 견디는 엘스베트와, 세상만사에 불만인 마를리스. 버석거리는 가죽재킷을 입고 심리 상담을 하는 마쉬게 박사와, 아빠의 ‘상처를 외면화한’ 잡종 개 알래스카까지. 걱정 가득한 그들의 미소로 다시 일어난 루이제는 스물두 살이 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향방을 90도로 틀어놓게 될 청년 프레데릭을 만나는데 ….
 
소설 제목에 쓰인 ‘오카피’는 멸종 위기에 처한 포유류 이름이다. 기린 같은 몸통에 얼룩말 무늬 종아리, 노루의 눈과 쥐의 귀를 지닌 아름다운 동물. 지금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마리아나 레키는 마치 오카피처럼, 따로 떼어 볼 때 어딘지 아프고 우스꽝스러운 우리 삶의 깨진 조각들을 색색의 털실로 스웨터를 짜듯 그려낸다. 눈물 펑펑 쏟으며 책장을 덮고도 마음이 폭신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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