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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나랏돈은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중앙선데이 2019.03.22 17:00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일본은 매년 세출 예산의 4분의 1을 나랏빚 이자를 갚는 데 씁니다. 대략 연간 23조5000억엔(약 245조원) 정도를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이자를 갚는 데 사용하는 것이죠.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는 230%를 넘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110%대인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국가 부도 사태 같은 태풍에 휩싸인 적은 없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는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00% 수준이었을 때 힘겨운 재정위기를 겪었습니다. 2001년 국가 부도 처리 당시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채 비율은 50%를 조금 넘었습니다. 멕시코도 마찬가지입니다. 1982년 국가 부채 비율이 40%가 조금 넘은 상황에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습니다.
  
안심할 수 있는 절대적인 국가 부채 규모란 없습니다. 물론 빚이 적을수록 위기에 빠질 확률이 낮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마지노선은 없습니다. 한국은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39% 정도로 나라 살림이 건전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 협의단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연례협의를 한 뒤 발표한 보고서의 핵심 중 하나는 “나랏돈을 더 풀라 ”입니다.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는 국면에서 재정 지출을 더 확대하라는 권고입니다. 
넥메틴 타르한 페이지오글루(Necmettin Tarhan Feyzioglu) IMF 한국 미션단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연례협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넥메틴 타르한 페이지오글루(Necmettin Tarhan Feyzioglu) IMF 한국 미션단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연례협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나라 살림을 빚내지 않고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경기가 가라앉을 때는 적자를 감수하고 나랏돈 씀씀이를 늘여야 합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필요한 사회 간접자본, 연구 개발, 교육 등 장기적인 생산 능력을 키우기 위해 빚을 내는 것은 적자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여유가 있다고 나랏돈을 쏟아부은들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면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동안 한국은 ‘건전 재정’ 모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이런 기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나랏돈을 더 풀어 경기도 떠받치고 일자리ㆍ복지 등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IMF의 권고는 현 정부 관계자들에게 힘을 실어 줍니다. 벌써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얘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돈이 어디에 쓰이느냐는 점입니다. 주로 일회용 일자리를 만드는 데 들어갔습니다. 앞으론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아 필요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시설과 도로 구축에도 들어갈 예정입니다. 우선순위로 따져 이런 지출이 급한 걸까요. 중요한 건 효과적인 재정지출인지를 따지는 능력입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36% 수준으로 낮은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편이다. 중앙포토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36% 수준으로 낮은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편이다. 중앙포토

 
당장 체력이 떨어졌다고 강장제만 잔뜩 먹어봤자 효과는 잠시뿐입니다. 중요한 건 기본 체력입니다. 나랏돈 씀씀이를 최대한 자제하라는 ‘재정 건전성’ 도그마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저는 허투루 쓰는 것보다는 안 쓰는 게 낫다고 봅니다. 나랏돈은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빚이 쌓이면 그 부담은 후손에게 넘어갑니다. 이왕 돈을 쓸 거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력을 튼튼하게 키울 수 있는 곳에 쏟아붓자는 겁니다.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노동 시장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구조 개혁에 나서면 기득권을 누리던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이들의 저항은 강합니다.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도 살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돈을 쓰는 고민을 해 보자는 것이죠. 구조 개혁은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성과는 모두가 누립니다. 이게 나라 곳간을 채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혼수상태에 빠진 브렉시트의 현실을 다뤘습니다. 아직도 영국은 브렉시트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브렉시트 혼란과 파장 등을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연재가 이번 주부터 재개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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