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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미모 '당금애기'가 삼신할머니 된 이야기

중앙일보 2019.03.22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29)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지만 남녀 이성이 만나 마음과 몸을 주고받을 때 사랑의 열락에 가득 찬 황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진 pixabay]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지만 남녀 이성이 만나 마음과 몸을 주고받을 때 사랑의 열락에 가득 찬 황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진 pixabay]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한다. 남녀 이성이 만나 마음과 몸을 주고받을 때 사랑의 열락(悅樂)에 가득 찬 황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들이 생기게 마련이며, 세상은 관계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경제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일수록 그 요구에 부응하기는 쉽지 않다. 일시적인 만남이었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이였든 사랑을 한 결과는 현실 속에서 처절하게 상처를 남기고 눈물을 쏟게 한다.
 
둘의 사랑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헤어지거나, 버림받거나 하는 일이야 흔하디흔하지만 여기에 아이 문제가 끼어들면 일이 참 복잡해진다.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혼전임신과 미혼모(未婚母)로 나타나는데 이럴 때 미혼부(未婚父)는 표면에 등장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 또한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다.
 
관계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곧 철없는 사랑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와 배경들이 작용하겠지만 순진한 처녀가 세상 물정 모르고 당하는 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처녀의 표상이라 할 만한 인물이 우리 신화 '제석 본풀이'의 당금애기이다.
 
말 그대로 구중궁궐, 아니 그보다 더한 열두 담장, 열두 대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집 안에, 그것도 줄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후원 별당에 들어앉은 처녀가 당금애기이다. 돋아오는 반달 같고 넘어가는 일월 같은 미모를 가졌지만 담장 밖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처녀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아홉 명의 오빠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당금애기 혼자 있을 때 시주승이 찾아왔다. 시주승은 그날 당금애기의 집에서 하루 묵고 갔고 당금애기는 그날 이후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사실을 알게 된 아홉 오라비는 당금애기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어머니가 겨우 말렸지만 당금애기는 홀로 뒷산에 버려졌고 그곳에서 아들 쌍둥이 삼 형제를 낳았다.
 
다시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키웠는데 무럭무럭 자라 일곱 살이 된 아이들은 아버지를 궁금해했다. 당금애기는 시주승이 떠나기 전에 주었던 박 씨 세 개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이걸 심어 줄기가 뻗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박 줄기를 따라가 시주승을 만났고 시주승이 제시하는 시험을 통과한 뒤 아들로 인정받았다. 아이들은 각각 금강산 부처님, 태백산 문수보살, 골매기 성황님이 되었고 당금애기는 삼신할머니가 되어 마을마다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돌봐주게 되었다.
 
당금애기 이야기는 '제석본풀이'로 전해진다. 당금애기가 낳은 세 아이가 제석신으로 모셔지는데, 사진은 그 모습을 나타낸 그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당금애기 이야기는 '제석본풀이'로 전해진다. 당금애기가 낳은 세 아이가 제석신으로 모셔지는데, 사진은 그 모습을 나타낸 그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길고도 긴 서사를 정말 간단하게 간추렸다. 당금애기를 서사의 주체로 두고 보면 세상 대책 없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부모, 형제 없이 혼자 집 안에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절에서 나온 시주승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남성인데 함부로 낯선 남성을 집 안에 들이고, 그 남성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한방에서 자고 가겠다고 하니까 그걸 또 그대로 받아들였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참 철없이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아가씨이다. 의심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건은 그렇게 일어나는 법이다. 철저하게 대비하고 조심했다면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 아니, 철저하게 대비하고 조심하더라도 일이 생기려면 어떻게든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요새 젊은이들이 세상 똑똑한 것 같아도 참으로 어이없게도 이성 간의 만남에서 실수도 하고 그래서 아직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한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본다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결혼을 전제로 한 관계였다면 혼전임신이야 요새 워낙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데, 그렇게 아이는 갖게 되었지만 결혼으로 맺어지지 못할 때는 문제가 커진다. 대개 이런 경우 남성은 간 곳도 알 수 없고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출산과 양육 과정은 여성 혼자서 온전하게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시주승으로 일컬어지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신적 존재이다. 어떤 면에서 당금애기는 선택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구도가 갖추어지긴 쉽지 않고,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을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하는 서사가 남는다.
 
딸에서 어머니로, 고통스런 변화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삼신할머니초상. 삼신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의 초상화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 문화포털]

삼신할머니초상. 삼신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의 초상화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 문화포털]

 
그러나 당금애기는 느닷없이 미혼모가 되었던 순진한 처녀인데 신이 되었다. 우리 신화가 본래 이렇다. 처음부터 대단한 영웅은 없다. 그냥 평범하거나 심지어 뭔가 좀 많이 모자란 인물이었는데 어떤 과정들을 겪어내고 나면 그 공로상으로 받는 게 신직(神職)이다.
 
당금애기는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로 남성을 맞아들이는 일을 겪었지만 그저 닥친 대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로 자기 생을 마주하지는 않았다. 쉽사리 좌절하여 생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묵묵하게 겪어 내기’가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미혼모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길이라고 제시하는 대로,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남성을 만나 적당한 수준으로 결혼하고 적당한 때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한 모든 여성도 실은 당금애기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과 만나 몸을 섞고 제 몸 안에 생명이 들어서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느닷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하고 대비하였더라도 그 일을 겪어내는 동안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광주의 한 아파트 복도에 버려진 신생아를 보온조치해 생명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여대생이 실은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아는 자신의 아이였다. 사진은 긴급출동한 119구급대원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신생아(붉은 원)의 모습.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광주의 한 아파트 복도에 버려진 신생아를 보온조치해 생명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여대생이 실은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아는 자신의 아이였다. 사진은 긴급출동한 119구급대원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신생아(붉은 원)의 모습.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낙태금지법 허용 논쟁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결혼하지 않았고,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제적인 기반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런데도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어린 엄마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들을 대책 없는 철부지로만 생각할 것인지. 산속에 홀로 버려진 듯 두렵고 고독한 절망 속에서도 자신 안에 들어앉은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어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
 
이들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누구보다 가족에게 먼저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 가족에게서 먼저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엄마,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복대를 둘러차고 요새 살이 쪄서 그렇다고 둘러대며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배려 깊은 시선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당금애기의 어머니, 특히 오빠들이 보인 태도가 이야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한 채 세상에서 버림받을 짓을 하고야 말았다는 그 죄책감을 혼자 감당하며 그런데도 생명을 거부하지 못해 낳을 수밖에 없었던 지점에 우리 귀와 눈과 마음이 가 닿아야 할 것이다.
 
당금애기가 삼신할머니가 되는 과정은 여성이 일생 겪어야 하는 일이 의미하는 바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딸에서 어머니로 존재를 변환하는 과정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한 고통을 겪어 냈기에 그 모든 과정을 담당할 수 있는 삼신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 출산, 양육이 여성 삶의 원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들은 남성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야기 속의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 평범한 지상의 인간으로서 남성은 어떤 역할을 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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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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