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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중앙일보 2019.03.21 00:21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물가에 앉으면 말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자가 현자를 만나면 왜 말없이 차만 마시는 줄 이제 알겠다. 존재의 바닥에 이르면 거기는 고요이지 침묵이 아니다. ‘고요의 말’이 있다. 누가 어찌 살았던 그 평생은 이 말 한마디를 찾아 헤매는 길인지 모른다. 사실 누구나 구도자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
 
“삶은 향연이다. 너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가라.”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아침의 피아노

아침의 피아노

“아침부터 새우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산책을 한다. 걷다가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잿빛이다. 그래서 더 멀고 더 깊어 보인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승천은 성자만이 한다. 우리는 마지막에 모두 성자가 되는 걸까.”
 
  
2018년 세상을 떠난 철학자·미학자 김진영의 유고집 『아침의 피아노』중에서. 1년 암 투병 중에 쓴 메모를 일기 형식으로 모았다. 부제가 ‘김진영의 애도일기’다. 그는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이 글을 썼다. 마지막 페이지, 그의 마지막 문장은 “내 마음은 편안하다” 딱 한 줄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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