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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5년 내내 적폐 수사, 가능한 얘긴가

중앙일보 2019.03.21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가영 사회팀 차장

이가영 사회팀 차장

“세 가지는 반드시 임기 5년 내내 계속 할 겁니다. 적폐수사, 확실한 우리 사람 챙기기 인사, 그리고 호남 우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정권 핵심들과 가까운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얘기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은 노무현 정부가 그 세 가지를 제대로 못해 실패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취임초 자신들도 대선자금 수사에 발목잡혀 타격을 입었다. 탕평인사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권탄생의 버팀목인 호남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큰 기대를 받았음에도 임기말 바닥을 친 지지율을 안고 퇴장했다.
 
처음 “세 가지를 5년 내내 하겠다”는 얘길 들었을 땐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다. 그러나 임기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에 와서 보니 설마가 현실화되는 느낌이다. 문 대통령은 초대 총리(이낙연)와 비서실장(임종석)으로 모두 호남 출신을 낙점했다. 최근 단행된 7개 부처 개각에선 (고향 기준) 호남 인사가 4명 포함됐다. 청와대가 이를 출신고 기준으로 바꿔 ‘호남은 0명’이라고 발표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보면 웬만한 부처의 산하기관 임원을 선거캠프나 여권 사람들로 채우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하나인 ‘5년 내내 적폐수사’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지난 18일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의 일성이 “명운을 걸고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을 조사하라”여서다. 사법연수원(12기) 차석 졸업생인 문 대통령이 공소시효 만료 등을 몰라서 한 얘기는 아닐 거다. 동기 중 수석이 김용덕 전 대법관, 3등이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인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이 얼마나 법리에 밝은지 설명할 것도 없다. 그런 대통령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넘어 사건을 콕 집어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벌써부터 분주해졌다. 법무부는 특임검사, 재수사 얘기까지 꺼냈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 수사는 인사와는 달리 현 정권을 직접적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의 재조명이 현 정권이 적폐로 지칭하는 전 정권 관련 세력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직은 검찰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볼 듯 하지만 유한한 정권을 오랜 기간 경험한 검찰은 다음 정권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일 때가 많다. 5년 내내 하고 싶은 적폐수사가 자신들을 겨누는 수사로 바뀔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내공과 숙련된 초식없이 휘두른 칼은 결국 자기 살과 뼈 속으로 파고든다는 사실은 이미 누대에 걸친 전 정권의 흑역사가 증명해 주지 않았나.
 
이가영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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