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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는 난색인데 "교내 전범기업 제품에 인식표 붙이자"는 경기도의회

중앙일보 2019.03.20 14:11
경기도의회가 도내 학교의 일본 전범 기업 제품에 인식표를 붙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를 시행해야 하는 경기도 교육청과 교육계가 외교 문제 등을 언급하며 난색을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경기도의원 27명 조례안 발의, 26일 상임위 상정
이재정 교육감 "법이나 조례보다 자연스럽게 인식해야"

20일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황대호(수원4) 도의원 등 27명은 '경기도교육청 일본 전범 기업 제품 표시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범 기업을 알리는 인식표 [사진 경기도의회]

전범 기업을 알리는 인식표 [사진 경기도의회]

 
이 조례는 교육감이 각 기관이 보유·사용하고 있는 전범 기업 생산 제품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 결과를 매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전범 기업이 생산한 20만원 이상 제품에는 '본 제품은 일본 전범 기업이 생산한 제품입니다'라는 인식표를 붙여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황 의원은 "전범 기업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우리 국민을 강제 징용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여전히 반성도 보상도 없었다"며 "소비자도 반성하지 않는 전범 기업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례안은 26일부터 열리는 상임위원회를 거쳐 다음 달 열리는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다. 관련 상임위원회(제2교육위원회)는 전체 의원 중 13명 중 12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경기도의회도 도의원 142명 가운데 135명이 민주당이다. 민주당의 뜻대로 의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조례가 의회를 통과하면 경기도교육청은 20일 이내 이를 공표하거나 재의 요구를 해야 한다.  
경기도의회 전경.[중앙포토]

경기도의회 전경.[중앙포토]

  
문제는 해당하는 기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해당 조례안은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전범 기업(299개) 명단을 따르고 있다. 그중 현존하는 전범 기업은 284개다. 도시바, 히타치, 가와사키, 미쓰비시 등 유명 기업도 포함됐다.
황 의원이 경기도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도내 각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빔프로젝터, 캠코더, 카메라, 복사기 등 주요 교육기자재의 50~70%가 일본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다. 이중 전범 기업이 생산한 제품은 품목에 따라 10~2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 조례는 '전범 기업'의 범위를 '일제강점기 이후 설립됐더라도 전범 기업의 자본으로 설립됐거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흡수·합병한 기업'까지 포함하고 있다. 대상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거다. 
 
경기도 교육계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조례안이) 한일 외교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에서 입장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은 "정치적 문제이기에 교육계가 어떤 의견을 직접 말하는 것은 오해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교육청이 조례에 대해 좋다, 나쁘다 말하기보단 도의회가 적절하게 토론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조례, 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범 기업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교육을 정치와 연결하지 말라" 교육계 반발
지역 교육계도 반발했다. 노시구 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전범 기업과 교육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라며 "전범 기업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면 도의회 차원에서 전범 기업 제품 불매운동 등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고교 교사도 "교육은 교사가 하는 것이지 의회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며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며 학생들에게 증오와 미움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전경. [뉴스1]

경기도교육청 전경. [뉴스1]

 
특히 관련 상위법도 없는 상태라 해당 조례를 무턱대고 시행했다간 한일 외교 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지역 정치계 관계자도 "기존 장비를 새로 바꾸는 등 예산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전범 기업 관련 교육은 교육계가 자체적으로 할 일이지 정치인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염종현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부천1)은 "해당 조례안이 당론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깊게 토의해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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