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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말 여기 있는 거지?" 초현실적인 풍광에 넋을 잃다

중앙일보 2019.03.20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18)
밀포드 트랙 정상. 맥키논 패스의 빙하 호수. [사진 박재희]

밀포드 트랙 정상. 맥키논 패스의 빙하 호수. [사진 박재희]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겁니다.”
정상에 오르는 날 산장지기가 한 말이다. 해도 뜨기 전에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후줄근하게 늘어진 우리 일상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버렸던 한장의 사진, 이곳을 향해 가방을 싸게 만든 그 사진 속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우리를 매혹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의 일부가 될 날이다. 맥박은 평소보다 두 배쯤 빨라졌다.
 
어스름한 푸른 빛의 숲을 지나면 지그재그로 한참 동안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맥키논 패스는 빙하로 깎아놓은 가파른 협곡의 중심부에 있다. 맥키논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트 산, 벌룬 산, 엘리엇 산, 산, 산, 산…… 산들은 머리부터 어깨까지 만년설을 두르고 있다. 설산은 이따금 돌풍 소리와 함께 눈 소용돌이를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렸다. 까마득하고 웅장한 아름다움, 두발로 오르면서도 실감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현실에 있었다.
 
빙하가 깎은 클린톤 계곡을 내려다보듯 고산화, 마운트 릴리가 피어있다. [사진 박재희]

빙하가 깎은 클린톤 계곡을 내려다보듯 고산화, 마운트 릴리가 피어있다. [사진 박재희]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파란 하늘과 구름보라에 정신을 팔려 몇 번을 미끄러졌다. 눈도 하얗고 꽃도 하얗고 머릿속도 하얗게 비워졌을 때 몸을 확 뒤로 채가는 바람이 불며 맥키논 기념비가 눈에 들어왔다. 밀퍼드 트랙을 처음 개척한 맥키논을 기리기 위한 석탑이 있는 곳. 드디어 정상에 온 것이다. 태초 이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만 같은 곳. 실제로 땅을 딛고 서서 두 눈 가득 들여놓은 풍경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다.
 
“드디어 왔어. 믿기지 않아.”
“우리 정말 여기 있는 거지?”
바보들처럼 서로 얼굴을 보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산꼭대기의 고산 호수와 작은 연못은 얼음 거울처럼 빛난다. 설산이 업은 하늘 구름은 타임랩스로 찍은 영상처럼 순식간에 모양을 바꿔 흘렀고 고산 초원지대에서 자란 풀 자락은 바람이 눕히는 대로 언덕을 따라 황금 물결을 만들었다.
 
밀퍼드 트랙의 맥키논 패스에는 빙하호수와 함께 곳곳에 tarn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다. [사진 박재희]

밀퍼드 트랙의 맥키논 패스에는 빙하호수와 함께 곳곳에 tarn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다. [사진 박재희]

 
어제 민타로 산장에서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내려온 별들은 “네가 사는 곳이 우주야”라고 속삭였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태초의 공간으로 옮겨진 기분이다. 시간의 고리를 잡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밀퍼드 트랙은 일종의 우주 체험이다. 다시 한번, 내 잘못이 아니다. 초현실적인 풍경을 사람들의 소심하고 쩨쩨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쉬움은 등산화를 뚫고 뿌리내리고 있었다. 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은 내 몸을 통째로 흔들고 돌리고 밀어댔지만 더, 조금만 더 머물고만 싶다. 바람이 심한 데다 언제 기상이 변할지 몰라 위험하다는 경고가 계속되었지만 일행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곳을 떠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산 정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순간이라면 우주의 진공상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태를 맞이한다. [사진 박재희]

산 정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순간이라면 우주의 진공상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태를 맞이한다. [사진 박재희]

 
엘리엇 피크를 마주 보는 하산 길. 산을 가로지르던 바람은 자꾸만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냈다. 발아래 거친 돌부리에 걸리지 않으려면 초긴장 모드여야 한다. 바닥을 살피느라 내려가는 길은 마음만 바쁠 뿐 엉금엉금이다. 등산 스틱으로 짚어가며 땅만 쳐다보다가 머리를 들어 앞서가는 친구들을 보았다. 앞선 원정대 친구들은 그림처럼 펼쳐진 계곡을 점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멀리 있는 내 눈에는 그들이 걷는 길옆 가파른 절벽이나 돌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나처럼 친구들도 낭떠러지를 피하며 돌부리 위로 걷고 있을 텐데, 이끼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후들후들 두 다리를 다잡아 내려가는 중일 텐데, 멀리서는 그저 보기 좋은 풍경일 뿐이다.
 
뉴질랜드 피오르드랜드는 남반구의 알프스라고 부른다. 하늘로 오르는 길. [사진 박재희]

뉴질랜드 피오르드랜드는 남반구의 알프스라고 부른다. 하늘로 오르는 길. [사진 박재희]

 
자기가 걷는 길을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걷는 길은 그저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돌무더기만을 지나왔다 했지만 그때는 바로 웅장한 산에 들어 있는 때이다. 입을 다물지 못했던 초현실적인 풍경이지만 그 길을 걷는 이에게는 한 치 앞의 낭떠러지였고 이끼가 덮은 돌이었다. 살아가는 일도 그렇지 않던가? 우리가 인생에서 지나야 하는 길은 너덜겅 길이면서 동시에 장엄한 풍경이다.
 
한 번도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았을 곳, 계곡의 구석진 곳에 꽃이 피어 있었다. 깊고 높은 산, 어마어마한 산맥의 구석에 핀 그 꽃의 얼굴을 바라봐 준 사람이 있었을까?
 
이끼가 나무처럼 자라는 밀퍼드의 깊은 숲. [사진 박재희]

이끼가 나무처럼 자라는 밀퍼드의 깊은 숲. [사진 박재희]

 
‘안녕? 난 한국에서 왔어. 너 참 예쁘다.’
대체 왜 그랬는지, 난 분명 멀쩡한 정신으로 돌부리 아래, 음지의 기슭에 핀 꽃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물론 어린 왕자의 행성에 핀 장미처럼 대답하거나 그러는 꽃은 없었다. 그러리라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거대한 산이란 것이 실은 하나하나의 돌이고,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렇게 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멋진 풍광, 죽기 전에 걸어야 할 길에는 누구 하나 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죽을 힘을 다해 피어난 꽃과 풀이 살고 있었다.
 
바라보는 산은 아름답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진짜 산이 아니다. 산에 들어가 걷는 이에게 산은 더 이상 거대하고 웅장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너무 아름답고 장엄해서 비현실적이었던 존재는 사실 무수한 돌멩이였다. 바람에 몸을 떠는 풀 포기였고 시간을 감고 자란 나무였으며 개울이고 폭포였다. 산은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의 모든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항공에서만 폭포의 모습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580m 높이의 서덜랜드 폭포. 산 전체를 울리며 천둥 치는 소리를 낸다. [사진 박재희]

 
자기가 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해도 꽃은 산이다. 흔해 빠진 돌이라고만 여겼던 돌이 바로 산이었다. 거대한 존재를 만드는 작고 위대한 존재가 지천이었다. 산이 되려고 할 필요 없이 꽃과 돌 그대로 충분하듯 나도 그렇게 살면 될 일이었다.
 
“나로 살자.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말고.”
밀퍼드 트랙의 하이라이트, 폭포가 이어지는 하산 길에는 천둥처럼 소리치는 폭포보다 더 큰 외침이 마음을 채우고 울려 퍼진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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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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