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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착한 가격’ 포퓰리즘 그만둘 때다

중앙일보 2019.03.20 00:1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착한 가격’으로 분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좌파다. 완력으로 ‘착한 가격’을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골수 좌파’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한 착한 가격 콤플렉스로 경제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다. 뻔히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도 법 대신 완력까지 써가며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현장이 있다.

 
#1. 짐보리·맘스터치·돈까스클럽 등 프랜차이즈 55개사는 지난 13일 헌법소원을 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착한 가격’을 정착시키겠다며 지난해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바꿔 원가 공개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다음 달까지 원가를 공개해야 하는데, 회사마다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나 눈치 보기에 바쁘다. ‘적절한 도매가격’을 밝히라는 식의 애매모호한 시행령 탓이다. 업계는 원가 공개를 재산권 침해로 보고 있다. 영업 전략과 각종 노하우가 가격에 녹아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시행령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건 헌법의 기본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오죽하면 업계가 절대 갑인 공정위에 반발하겠나”고 하소연했다. 그는 “(공정위 의도와 달리) 작은 가맹본부가 더 불리해지고 가맹업자 간 담합을 부추길 수 있다”며 “극단적으로 140만 프랜차이즈 종사자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협회는 흔한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2.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5일 SK텔레콤이 신청한 5G 요금제에 대해 “(7만원이 넘는) 대용량·고가 요금제만 있다”며 반려했다. 3만 원대의 ‘착한 요금제’ 추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내용을 공개하고 보도자료도 냈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압박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 바람에 5G 세계 첫 상용화도 물 건너 갈 위기다. 6~7년 전 이스라엘의 통신 포퓰리즘 재앙을 떠올리는 이도 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지나친 가격 인하 경쟁은 이통사 수익 감소→신규 투자 위축→품질·속도 저하→4G 보급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 급락→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졌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디딤돌이다. 정부의 ‘착한 가격’ 집착증으로 5G 선두자리를 놓쳐서야 되겠나.

 
#3.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계획에 ‘보험상품 사업비 원가 공개를 통한 보험료 인하 유도’를 명시했다. 전형적인 금융 포퓰리즘이다. 업계는 “보험료를 강제로 내리면 보험사는 보장 범위를 낮추는 등 소비자에게 손실을 떠넘기게 될 것”이라며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금융위는 지난해 카드수수료, 올해 대출금리 인하도 강행했다. 법 규정을 어겨가면서 밀어붙인 카드수수료 인하의 부작용은 예상대로다. 현대·기아차에 이어 통신·항공·마트 같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가 잇따라 수수료 갈등을 빚으면서 고객 불편은 늘고 혜택은 줄고 있다. 원인 제공자인 정부는 뒤늦게 “시장에 맡긴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권력이 가격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유래가 깊다. 동서고금,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했다. 대개 평등과 효율의 저울추를 잘못 달았기 때문이다. 과하면 효율을 잃고 모자라면 평등이 망가진다. 명품 좌파라면 효율을 해치지 않고 평등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쯤 정부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됐다. 명품 좌파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이젠 착한 가격 집착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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