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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지금…” 수사권 조정 국면서 '버닝썬 유탄' 속타는 경찰

중앙일보 2019.03.19 05:00
성접대 등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승리가 14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성접대 등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승리가 14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요즘은 경찰 유착 관련된 보도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합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한 경찰 간부의 말이다. 최근 버닝썬 사건으로 경찰과 강남클럽간의 유착 의혹이 커지자 경찰 조직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경찰의 숙원인 검ㆍ경 수사권 조정이 가시권에 놓였지만 버닝썬 사태로 일각에서 “경찰을 믿고 수사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비판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경찰 간부는 “하루하루 줄을 타는 기분이다. 버닝썬 수사에 경찰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작은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상황을 전했다. 최근 유리홀딩스 대표 유모(34)씨를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는 윤모 총경이 피의자로 입건되는 등 심상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자 이런 걱정을 내비치는 경찰들이 부쩍 늘었다.
 
"지방 토호 유착" 버닝썬 유탄 맞은 자치경찰제 
‘버닝썬 유탄’을 직격으로 맞은 것은 단연 자체경찰제다. 자치경찰제는 청와대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비대화를 막는 조치로 내세운 제도로,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자치경찰을 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ㆍ청와대는 올해 자치경찰제 입법을 완료해 서울 등 5개 시도에서 시범 실시하기로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버닝썬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일각에선 ‘자치경찰제 도입 뒤 지역 유력 인사, 의원 등 토호들과 지역 경찰의 유착이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버닝썬 사건이 경찰 유착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4일 국회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업무보고에서도 의원들이 질타가 쏟아졌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자치경찰제를 하겠다는 것이냐. 지방 토호세력과 경찰이 더 밀착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도 “자치경찰제 도입 후 제일 걱정하는 게 지역 토호와 경찰의 결탁”이라고 지적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버닝썬 수사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수사권 조정도 버닝썬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국 경찰서 중 규모가 크다는 강남경찰서에서 이런 문제가 터졌는데, 향후 경찰을 믿고 수사를 맡길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와서다. 경찰 출신인 표창원 민주당 의원도 16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경찰관 출신으로서 대단히 아프고 쓰리다”면서도 “이번 (버닝썬) 사건만큼은 과감하게 검찰에 수사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경찰청 간부는 “이번 유착 의혹은 경찰의 아주 일부에서 발생한 잡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시기적으로 경찰 입장에서 매우 뼈아픈 사안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버닝썬 수사에 사활
버닝썬 사태 초기만 하더라도 경찰에선 지금처럼 위기감이 심하진 않았다. 강남서 경찰관 출신인 강모씨 등 의혹이 주로 전직 경찰관의 ‘일탈’ 수준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총경이 피의자로 전환된 데 이어, 강남서 출신 경찰들이 업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줄줄이 입건되는 등 현직 경찰들이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 내부에서도 “하나라도 덮지 말고 경찰 비리를 이 기회에 다 밝혀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윤모 총경 등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유리홀딩스 대표 유모(왼쪽)씨.[뉴스1]

윤모 총경 등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유리홀딩스 대표 유모(왼쪽)씨.[뉴스1]

특히 경찰들 사이에서는 이번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수사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를 믿지만 유착 의혹 등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새로 불거질 경우 경찰의 신뢰에 타격이 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8일 간담회에서 “국민적 불신과 우려가 상당하다는 것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경찰 유착 부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수사하고, 어떤 지휘 계급이든 엄중 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총경급 간부는 “오히려 자치경찰제 등이 도입되기 전에 이런 일이 터진 것이 다행인 측면도 있다”며 “경찰 조직의 개혁을 앞두고 잘못된 폐습을 털고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수사권 조정을 놓고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정원법 개정 등을 거론하며 “이제 정말 국회의 시간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 등 여야 4당은 수사권 조정을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묶어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처리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이를 ‘3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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