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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영리한 IMF, 웃는 문재인 정부

중앙일보 2019.03.19 00:3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문재인 정부에 귀인이 찾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IMF 연례협의단은 경제난으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현 정권 귀에 쏙 들어올 처방전을 제시했다.
 
우선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한국과의 연례협의결과 발표문에서 “한국 경제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어 정책조치가 필요하다”고 자락을 깐 IMF 협의단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명시했다. 한국 정부의 성장 목표(2.6~2.7%)를 달성하려면 약 9조 원대 추경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IMF가 매년 우리 정부에 여러 정책 조언을 해왔지만, 이처럼 규모까지 콕 찍어 추경을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구제금융을 해줬다는 이유로 재정지출에 일일이 간섭하던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를 연상시킨다.
 
추경 얘기는 문 대통령이 이달 초 먼저 꺼냈다. 극심한 미세먼지 사태가 민심이반으로 이어지자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미세먼지 저감 대책만으로는 ‘미니 추경’을 넘어서는데 한계가 있다.
 
서소문 포럼 3/19

서소문 포럼 3/19

정부가 돈을 확 푸는 추경은 성장률 수치 높이는 데는 직방이다.  추경의 정확한 효과를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당장의 성장률은 올라가게 돼있다. 정부는 내심 고민이었을 것이다. 470조 원의 역대 최대 예산을 들고 호기롭게 새해를 맞았지만 경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출은 곤두박질하고, 30~40대와 제조업의 일자리는 급감했다. 그렇지만 추경만큼 약발 좋은 부양 카드가 없다고 해도 3월 추경 얘기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 진단이 틀렸음을 시인하는 꼴이 되는 데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수퍼 예산’은 아직 현장에 제대로 풀리지도 않았다. IMF의 훈수는 ‘불감청 고소원’이라고나 할까. IMF가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며 추경의 멍석을 깔아준 셈이니 정부로선 야당의 추경 반대를 돌파할 명분을 얻은 셈이 됐다.
 
IMF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을 향해선 “한국은행은 명확히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IMF 인사들은 “금리 인하를 해도 심각한 자본 유출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가계부채는 한국 정부의 거시건전성 조치로 잘 대응할 수 있다” 등의 설명을 내세웠다. 금리 인하 부작용으로 거론되던 자본 유출과 가계부채 위험성을 일축한 것이다. 지난달 말 “기준금리가 여전히 완화적 수준이라 인하를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던 이주열 한은 총재의 인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어쩌면 금리 인하 권고야말로 현 정권 경제팀에서 박수를 쳤을지 모른다.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자 여권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저금리가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의 원인이라고 한은을 몰아세웠다. 결국 한은은 경기 침체와 고용위기 속에 ‘청개구리’라는 비난까지 받으며 11월에 금리를 올렸다.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쉽사리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는데, IMF가 금기 하나를 깨준 셈이다. 이제 한은은 IMF를 등에 업은 금리 인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정작 IMF는 한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 시스템이 왜 고장났는지, 기업 투자의욕이 외환위기 이래 최저로 떨어진 것이 무엇 때문인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협의단이 홍남기 부총리를 만나 빠른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우려를 표명하였다는 것과, 홍 부총리가 IMF의 그같은 우려를 이해한다고 밝힌 것만 전해진다. 정부의 방어논리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모르지만, 어쨋든 소득주도성장은 IMF의 예봉을 피했다.
 
사실 IMF 처방인 추경 편성과 금리 인하는 경기 침체의 아픔을 달래주는 진통제 역할을 하겠지만 일자리 실종과 투자 위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진 못한다. 최저임금 과속 질주와 법인세 인상 등 기업 옥죄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 없이 경제 심리는 쉽사리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IMF는 이번에도 “한국 경제는 튼튼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외환위기로 치닫던 1997년에도 같은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 뒤 한국 사회가 겪은 고통에 그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한국 경제가 또다시 ‘펀더멘탈론’에 취할까 걱정이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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