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분수대] ‘개작두’의 모욕감

중앙일보 2019.03.19 00:2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문희상 국회의장의 별명 ‘개작두’는 미스매치다. 이 별명은 20여년 전의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유래했다. 주인공인 중국 송나라 때의 명판관 포증을 맡은 배우가 문 의장을 닮았다. “개작두를 대령하라”는 판결은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명대사였다. 개작두는 평민 신분인 죄인의 목을 치는 단두대다. 문 의장도 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4년에 당내 계파주의를 겨냥해 “개작두를 칠 것”이라며 엄포용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제 입법부 수장인 그에게 붙은 사법부식 별명은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셈이다. 대한민국 최고 의회주의자의 역할은 목을 치는 대신 입을 열게 하고, 폭력은 협력으로 바꾸어 대화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난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문 의장은 목에 핏대를 세워야 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 했고, 여당 원내대표는 신성한 의사당 연단에 뛰어들었다. 맞고함을 치는 여야를 향해 문 의장은 “참고 또 참아라. 민주주의가 그렇게 도깨비방망이처럼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 싸움을 말리기란 개작두 아니라 도깨비방망이로도 힘든 일인지 모른다.
 
며칠이 지나 문 의장은 한 식사 자리에서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을 썼다. 『맹자』 이루 편에 나오는 사자성어는 “자신을 스스로 업신여기면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문 의장이 한국 국회와 민주주의의 현실에 자주 빗대는 말인데 “국회가 책임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야 대통령도 국민도 국회를 불신하지 않는다”는 소신이다. 해외에서는 관심과 추앙을 받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촛불 민주주의에 대해 정작 우리 국회는 ‘누워서 침 뱉기’를 하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담겨 있다. 어떻게 만들어 온 민주주의인데 야당이 대통령을 업신여기고, 여당이 야당을 우습게 안단 말인가. 입법부는 사법부를, 행정부는 입법부를 무시하는 행태는 또 뭔가. 모두가 국민을 위해서라는데 정작 이 나라의 주인은 모든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