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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상대당 실수로 버티는 거대 양당

중앙일보 2019.03.19 00:20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늘 보던 것이지만 다시 봐도 짜증이 난다. 국회가 ‘경색’이라고 한다.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이 자기 갈 길만 가고 있다. 정치에서 갈등은 일상사다. 새삼 분노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무슨 대단한 일이 있어 또 이 모양인가.
 

막말·정책 실패·극단적 진영화로
서로 지지율 올려주는 공생관계
거수기·돌격대 국회 막으려면
합의제 전제한 연동형으로 가야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인가. 아니다. 그러면 국민의 권익을 신장하는 일,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일인가. 전혀 아니다. 민망하게도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권력자에 대한 충성, 자기 밥그릇 챙기기다.
 
1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설할 때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뛰어나갔다. 협상 창구인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했다. 말길을 틀어막아 버렸다. 문제의 연설 대목을 다시 읽어봤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자극적인 표현에 화가 날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갈 정도는 아니다. 미국 언론 보도를 인용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불만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더구나 면책특권까지 부여된 국회 발언이다. ‘국가원수 모독죄’라고? 그런 법은 없었다. 권력자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던 시절, 국민 대신 참을성 없는 절대 권력자를 비판하도록 임무를 맡긴 게 면책특권이다.
 
이제 한술 더 떠 그 기사를 쓴 기자까지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외국 언론사 기자에게도 이러면, 국내 언론사 기자는 어디 무서워서 기사를 쓰겠나.
 
1979년 김영삼(YS) 신민당 총재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에 박정희 정부 지지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공화당과 유정회는 ‘헌정을 부정하고 사대주의 발언을 했다’며 김 총재의 의원직을 제명해버렸다. 결국 이것이 부·마 항쟁, 10·26으로 이어졌다.
 
김옥선 의원은 75년 국회 본회의에서 ‘전쟁위기 조성은 영구집권으로 가는 방편’이라고 비판했다가, 여당 의원들의 야유로 연설을 중단했다. 여당에서 국회 품위를 손상하는 이적 행위라며 제명안까지 제출, 결국 자진해서 사퇴했다.  
 
86년 국회 본회의에서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유성환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9달간 수형 생활까지 했다. 촛불 정부라는 이 시점에 왜 이런 과거를 돌이켜봐야 하는지 참담하다.
 
선거법을 둘러싸고 극한 대치다. 한쪽은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하고, 한쪽은 의원직 사퇴를 들먹인다. 여야 5당은 지난 연말 연동형으로 선거법을 고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차일피일하다 완전히 거꾸로 가는 선거법안을 내놨다. 개정하지 말자는 말이다. 국회의원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비례대표를 줄여 자기 지역구, 자기 자리를 지키겠다는 계산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회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의회사를 돌아보면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제1당인 경우(단점 정부)가 대부분이다. 결국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국회가 된다.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가로막고, 고함을 지르고,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여당…. 심지어 지금은 국민적 공감대가 된 발언을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하고, 교도소로 보낸 집권당…. 한국당과 민주당이 다르지 않다. 박근혜건, 문재인이건, 제왕적 대통령을 향한 여당 의원들의 행태는 차이가 없다.
 
국민은 특정 정당에 과반의 지지를 보낸 적이 드물다. 그 국민의 뜻대로 의회를 구성하자는 게 연동형이다. 제1당이건, 제2당이건, 다른 당과 대화와 타협 없이는 독주할 방법이 없다. 그래야 국회가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한 축으로 바로 설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문 대통령 지지도가 툭 떨어졌다. 지난주 한국갤럽이나 리얼미터 조사 모두 최저치다. 정당지지율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좁혀지고 있다. 자기가 잘해서 지지도가 오른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방이 잘못해 반사이익을 본다. 국정농단 여파로 소멸 위기에 처했던 한국당이 다시 살아난 건 민주당, 특히 문 대통령 덕분이다.
 
거대 양당은 서로 공생관계다. 막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지지율을 올려준다. 합리적인 대안세력은 발붙일 곳이 없다. 자극적인 말만 먹힌다. 욕을 하는 국민도 어느 틈에 정치인의 선동에 휘말려 패거리를 형성한다.
 
이 바람에 한국당은 개혁 기회를 놓쳤다. 비상대책위원회만 만들었지 달라진 게 없다. 다시 ‘친박’ 논란이다. 한국당도, 민주당도, 사과하고, 비대위 만드는 게 지겨울 정도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이런 추악한 공생 관계를 깨지 않고는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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