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이재철 목사 “나를 거침없이, 철저하게 버려달라”

중앙일보 2019.03.19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재철 목사는 ’산골의 거대한 자연은 내게 삶에 대한 겸손과 감격을 일깨워 준다.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맞지 못했을 날들, 상상하지 못했을 날들을 여기서 맞고 있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이재철 목사는 ’산골의 거대한 자연은 내게 삶에 대한 겸손과 감격을 일깨워 준다.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맞지 못했을 날들, 상상하지 못했을 날들을 여기서 맞고 있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원하신다면 이재철을 버리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지난해 11월 18일 이재철(70) 목사는 퇴임하며 한 마지막 주일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의 교인 수는 1만3000명이었다. 등록 교인 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출석 교인 수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13년 4개월 동안 담임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에게 그는 “나를 철저하게 버려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교회를 책임질 ‘4인 공동 담임목사들’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퇴임식도 따로 없었다. 큰 교회를 일군 담임목사들이 퇴임식 때 관행적으로 받는 수억 내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별금도 없었다.
 
이재철 목사는 “한반도 어느 곳이든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오는 곳을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삼아서 보내겠다. 굳이 ‘평당 10만 원’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그 정도 가격이라야 저희 부부 형편에 맞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 4부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는 이 목사를 배웅하며 교인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이 목사는 서울을 떠났다. 차를 타고 경남 거창군의 산 중턱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 30분이었다. 이 목사 부부는 이곳 웅양면의 해발 560m 산동네에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를 잡은 터였다.
 
지난해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이재철 목사는 몇 번이나 거절했다.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일 뿐”이라며 조용한 마무리를 다짐했다. ‘삼고초려’를 거듭한 끝에 결국 거창의 산골로 내려갔다.
 
이재철 목사 부부가 평당 10만 원짜리 땅에 지은 시멘트 집. 동굴수도원을 닮았다.

이재철 목사 부부가 평당 10만 원짜리 땅에 지은 시멘트 집. 동굴수도원을 닮았다.

15일 김천구미역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달렸다. 진눈깨비가 내렸다. 산 중턱 40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마을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이재철 목사에게 뒤늦게 물었다. 왜 자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는지.
 
퇴임 설교에서 왜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나.
“교회를 개척한 담임목사가 거침없이 떠나가는 ‘자기 버림’이 없으면 어찌 되겠나. 일평생 자신이 헌신하고 섬기던 교회에 걸림돌이 된다. 자신이 섬기던 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나.”
 
이 목사에게 이런 식의 ‘자기 버림’은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서울 정신여고에서 주님의교회를 개척해 출석교인 3200명의 묵직한 교회로 키운 뒤에도 “딱 10년만 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고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인교회에 가서도 그랬다. 3년에 걸쳐 미자립 교회를 자립 교회로 탈바꿈시킨 뒤에 이 목사는 교회를 떠났다. 자기 버림의 뿌리를 묻자 이 목사는 책장에서 성경을 꺼냈다. 요한복음 16장 7절이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도 떠나셨다. 떠남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셨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예수님이 떠나가야 비로소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보았다. 하물며 담임목사가 퇴임 후에도 교회에 머물면 어찌 되겠나. ‘원로목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머물면 그 교인들에게 유익하겠나,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나. 답은 명약관화하다. 목사가 퇴임하면 거침없이 떠나야 한다.”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다. 교회가 클수록 원로목사로 남아서 ‘상왕(上王) 노릇’을 하거나, 심지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기도 한다.
“‘진정한 버림’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버려야 하나. 버려야만 우리가 얻기 때문이다.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게 ‘전부’다.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그러나 버려본 사람은 안다. 버리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것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버려본 사람이 또 버리게 된다.”
 
이 말끝에 이 목사는 “1류 도공과 3류 도공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차이가 뭔가.
“둘 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서 가마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1류 도공과 3류 도공은 버리는 개수에서 차이가 난다. 1류 도공은 정말 뛰어난 걸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린 사람이다. 사람들은 빼어난 작품 한 점만 본다. 그러나 그 작품 뒤에는 수많은 깨어짐의 과정, 수많은 버림의 과정이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버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게 다가 아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걸 일종의 ‘종잣돈’이라 생각한다. 그걸 잃으면 모두 잃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막상 버려보면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그리스도교의 영성도 도공의 그릇과 똑같다.”
 
서울을 버리고 거창에 왔다. 도시를 버리고 산골에 왔다. 무엇이 열렸나.
“대나무숲의 파도 소리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친다. 아내와 나는 그걸 ‘죽림(竹林) 파도’라고 부른다. 밤에 들어도 좋고, 새벽에 들어도 좋고, 낮에 들어도 좋다. 이곳에 와서 내게 새롭게 열린 건 하늘과 땅이다. 한편으론 감사하고, 한편으론 경이롭다.”
 
이 목사는 산골에 내려와서 쓴 자작시를 한 편 보여주었다. 제목이 ‘바람’이었다. 거창의 산골에서 산과 구름과 대숲 소리로 자신을 관통하며 쉼 없이 불어대는 ‘하나님의 숨결’을 그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이 목사의 시를 꺼내 다시 읽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건 바람보다 거세고, 바람보다 깊고, 바람보다 고요한, 그런 바람이었다.
 
바람
-이재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하고,
로트레아몽은
좌절과 절망을 노래했지
 
하지만 나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바람이 분다
그래서 오늘도 산다
 
바람,
 

생명의 근원
지혜의 숨결
 
거창=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