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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된 보험사 교육장, 편집숍 변신한 신발공장

중앙일보 2019.03.19 00:01 종합 22면 지면보기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최근 롯데호텔 건너편 을지부영빌딩 지하에 들어와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시키는 1920년대 미국풍 인테리어로 꾸민 아트북 서점 ‘아크앤북’을 따라 들어가면 감도 높은 생활용품으로 채워진 ‘띵굴스토어’가 나온다. 한쪽엔 전통의 과자점 ‘태극당’ 첫 번째 지점이 있어 젊은 직장인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모여 앉아 티타임을 즐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험사의 직원 교육장으로 쓰이던 별볼일 없던 공간이 건물주가 바뀌면서 하루에 주중 200명, 주말 400명 이상 방문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13일 이 공간을 바꿔놓은 손창현 OTD코퍼레이션 대표를 만났다.  
띵굴스토어에서 만난 손창현 대표. 그는 최근 아트북 서점 '아크앤북'과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띵굴 스토어', 성수동의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잇따라 만들어낸 공간기획자다. 장진영 기자

띵굴스토어에서 만난 손창현 대표. 그는 최근 아트북 서점 '아크앤북'과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띵굴 스토어', 성수동의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잇따라 만들어낸 공간기획자다. 장진영 기자

 
처음 손 대표의 이름이 알려진 건 2014년 건대 인근에 만든 ‘오버 더 디쉬’부터다.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던 건대스타시티 건물 3층에 ‘셀렉트 다이닝’이란 컨셉트 공간을 만들어 젊은 층에서 인기 많은 동네 맛집들로 채웠다. 이후 글래드라이브 강남·마켓로거스·디스트릭트 등 줄줄이 새로운 외식 공간을 만들며 ‘버려진 공간을 살리는 외식 공간 기획자’란 타이틀을 얻었다.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지난해 1250억원의 매출을 냈고 ‘올해의 벤처기업’으로 선정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최근 자신의 전문 분야인 외식업과는 상관없는 책과 리빙용품을 주종목으로 한 공간을 잇달아 만들었다. 지난해 11월엔 을지부영빌딩에 대형서점(아크앤북)을 내더니, SNS기반으로 활동하는 살림 파워블로거 ‘띵굴마님’ 이혜선씨를 현실 세계로 끌고 나와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띵굴스토어)을 3개나 연달아 열었다. 올해 1월엔 신발공장으로 쓰였던 성수동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선보였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사람이 모이는 곳이 어떤 곳일지 생각하다 외식 공간부터 만들게 됐다는 얘기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동네 맛집을 즐길 순 없을까(오버 더 디쉬)’, ‘왜 맥주 전문점의 안주는 맛이 없을까(파워플랜트)’ 이런 식이다. 손 대표는 “우리 공간을 보면 많은 사람이 ‘나도 이런 곳을 생각했는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말은 누구나 원했지만 하지 못했던 공간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간기획자 손창현 씨가 기획한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아크앤북 전경. 1920년대 미국 스타일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진영 기자

공간기획자 손창현 씨가 기획한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아크앤북 전경. 1920년대 미국 스타일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진영 기자

아크앤북의 명소로 꼽히는 북 아치. 엘리베이터 앞 공간을 책을 이용해 꾸몄더니 인스타그램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공간이 됐다. 장진영 기자

아크앤북의 명소로 꼽히는 북 아치. 엘리베이터 앞 공간을 책을 이용해 꾸몄더니 인스타그램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공간이 됐다. 장진영 기자

 
이번에 문을 연 매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크앤북은 책을 보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다 만들게 된 서점이다. 서가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둔 건 기본이고, 바로 옆에 카페와 만두·쌀국수집을 배치해 음식을 먹으며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했다. 또 기존 대형서점이 수입원으로 삼는 출판사 광고 매대를 없애 ‘책을 사라’는 무언의 압박을 없앴다. 띵굴 스토어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사고 싶어하는 물건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성수연방은 ‘성수동에 카페 말고 갈만한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음식점을 서가 옆에 배치하면 음식 냄새가 책에 배서 책 못 판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책을 파는 것보다 사람들이 책을 보면서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이 (음식으로)오염되면 반품하지 않고 우리가 산다. 다행히 매출도 기대 이상으로 나오고 있다. 손익분기 시점을 6개월로 잡았는데 오픈 한 달만에 달성했다. 책을 즐기게 했더니 자연스레 책도 사더라.”  
띵굴마님의 집. 변선구 기자

띵굴마님의 집. 변선구 기자

띵굴마님의 집. 변선구 기자

띵굴마님의 집. 변선구 기자

 
이런 성공엔 그가 오랫동안 집중해온 ‘작은 브랜드의 역할’이 컸다. 누구나 쉽게 즐기는 빅 브랜드에서, 특별한 취향의 작은 브랜드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가는 지금의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진다. 오버 더 디쉬 론칭 당시 ‘도레도레’ ‘현선이네’ ‘로봇김밥’ 등 그가 발굴한 작은 맛집들은 지금 수십 개의 가맹점을 가진 외식 브랜드로 성장했다. 
현재 그를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작은 브랜드로만 구성된 띵굴 스토어의 활성화다. 처음엔 띵굴마님 이씨의 생활공간을 매장에 그대로 재현하고 그 속에 이씨가 아끼던 물건들을 배치할 생각이었지만, 자칫하면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과 똑같은 분위기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예쁜 살림집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감각적인 작은 브랜드를 많이 보여주는 것으로 컨셉트를 확장시켰다. 이씨가 간헐적 마켓으로 운영하는 '띵굴시장'의 오프라인 매장인 동시에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지난달 잠실 롯데몰에 오픈한 띵굴 스토어 3호점은 하루 700~800명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이번엔 '띵굴 브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한 화장품들을 소개할 계획"이라며 "이 역시 미역 줄기 성분으로 만든 크림 등 작은 브랜드가 주축이 된다"고 밝혔다.
서울 성수동 공장지대에 들어선 ‘성수연방’. 시내 맛집과 함께 소규모 식품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공유 공장을 마련했다. [중앙포토]

서울 성수동 공장지대에 들어선 ‘성수연방’. 시내 맛집과 함께 소규모 식품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공유 공장을 마련했다. [중앙포토]

 
성수연방은 조금 달랐다. 건축학도였던 그의 역량이 그대로 발휘했다. 그는 “회사 사옥으로 쓸 생각으로 10년 장기 임대를 한 건물이었는데 공간이 너무 좋아 우리만 쓰기 아까웠다. 결국 띵굴 스토어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아크앤북, 만두·캐러멜 등을 만드는 음식 공장을 넣어 다른 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신발공장으로 쓰였던 오래된 건물의 운치를 살리기 위해 골조를 최대한 살리고, 서점에서 만두 공장이 안이 들여다 보이게 벽을 유리로 만드는 등 사람들이 건물을 돌아다니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해냈을까. 그는 제 역할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자신의 비법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그 분야의 최고를 찾아내 ‘어벤저스 팀’을 구성하고, 나는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크앤북은 반디앤루니스에서 일했던 도서팀을 영입했다. 반디앤루니스는 일반적인 서점에서 탈피해 음반·문구류를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를 했던 서점이다. 띵굴 스토어는 현재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있어 어떤 사람이 가장 대중과 잘 소통하고 트렌드를 이끄는지를 살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여러 사람으로 나뉘어져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공간별 개성이 커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게다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OTD가 직접 공사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대기업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는 “이들을 서로 완벽하게 융합시키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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