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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에 나타나는 그 곳…35년 만에 복무한 부대를 가보니

중앙일보 2019.03.18 13:00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2)
‘에잇 잊을만하면 또 그 꿈이네 이런~ '새벽에 일어난 남편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무려 35년이나 잊을만하면 가끔 꾼다는 꿈, 도대체 무슨 꿈이길래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끈질기게 따라붙는 걸까?
 
35년 만에 군부대 앞 다방을 찾은 남편. by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35년 만에 군부대 앞 다방을 찾은 남편. by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그것은 한낱 개꿈일까 악몽일까?
지난 명절 연휴, 가족여행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제대한 지 딱 일 년이 지난 아들은 느닷없이 군 복무했던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니! 들리는 말로는 군필자들은 군부대 방면으론 소변도 안 본다는 속설이 있던데 웬일일까?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군 생활이 편했으니 저런 소리가 나온다며 예전 군대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나마 군대에서 축구 했던 이야기를 안 해서 다행인가?
 
35년이 흘렀음에도 육군 병장 출신이 꾸는 꿈은 스토리도 변하지 않는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멀쩡히 군 복무를 마치고 세월이 흐른 지가 수십 년, 어느 날 회사엘 갔는데 책상 위에 수상쩍은 우편물이 놓여 있다. 발신인은 병무청! 화들짝 놀라서 부랴부랴 봉투를 뜯어보면 내용 또한 늘 같은 주제라고 했다.
 
제대서류에 도장도 안 찍고 서명을 안 해서 다시 군 복무가 시작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입영통지서다.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병무청을 찾아가면 어김없이 담당자는 휴가 중이고 통화를 하려고 하면 전화 버튼이 그리도 안 눌러진단다. 하는 수 없이 재입대 서류를 들고 울먹이다가 깨곤 하는 개꿈인지 악몽인지 모를 꿈.
 
세상에나, 이젠 나도 외울 정도인 한결같은 스토리다. 입대신청도 인터넷으로 하는 세상에 이런 황당함이라니…. 언젠가 방송에서 유명가수도 이런 꿈을 꾸곤 한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나를 포함한 군 미필자들에겐 이상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이야기다. 제대한 지 35년 된 아저씨가 여태껏 꾸는 꿈이라니 참으로 놀랍기만 했다.
 
2017년 군부대방문의 날. 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인 사병들. by 갤럭시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2017년 군부대방문의 날. 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인 사병들. by 갤럭시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군인 아이들과 군인 아저씨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여행은 두 남자의 군부대가 있던 동네를 향해갔다. 아들이 복무했던 강원도 철원의 어느 부대 앞, 품 안의 아기 같았던 아들 녀석 면회를 다니며 정 들어버린 곳이다. 그땐 왜 그리 건장하고 듬직한 군인들이 모조리 아이처럼 보였을까!
 
부대개방의 날에 준비해간 돈가스 김밥을 볼이 터지게 먹던 모습, 읍내 외출 후 복귀를 위해 정류장 가로등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던 군인 무리의 모습 등 여전히 세상은 ‘군인 아저씨’라 부르기도 하지만 내겐 군복을 입었을 뿐인 솜털 뽀송뽀송한 아이들로 보였다. 제대한 지 일 년 남짓이어선지 아직은 재입대 꿈은 꾸지 않는다는 아들의 부대 앞을 지나서 이젠 35년간 황당한 악몽을 선물(?)해주는 남편의 그곳을 찾아갔다.
 
경기도 연천의 부대는 그사이 군 개편으로 부대명이 바뀌었다. 툭하면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는 나이에 군번만큼은 기가 막히게 따르르 외우는 남편은 부대가 가까워지자 음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부대 앞의 기차역을 보곤 저기 어디쯤에서 삽질했다느니, 무거운 배낭을 메고 행군을 밤새도록 했다는 둥 하면서 흥분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을 지금이라도 만나면 용서치 않겠다는 허세도 부려가면서.
 
그런데 부대 초소 앞으로 가던 남편이 갑자기 엄마 손을 놓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숨도 쉬었다가 씁쓸하게 웃고 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힘들고 외로웠을 젊은 날이 떠올랐을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그들을 군인 아저씨라 불렀겠지만 겨우 스물을 갓 넘겼을 어설픈 청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부대 앞 풍경들. [사진 홍미옥]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부대 앞 풍경들. [사진 홍미옥]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기차역이며 전봇대며 삐죽이 튀어나온 담벼락까지도 예전 그대로라며 신기해하던 남편이 탄성을 지른다. 그 시절 부대 앞 다방이 아직도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 곳은 사병들이 주로 다니던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간부급들이 드나들던 다방이라고 했다. 설마 영업을 할까 싶은 외양을 한 그곳의 문을 삐걱하고 열었다.
 
손님이라곤 없는 다방에서 무료하게 흘러간 TV 영화를 보던 주인은 시큰둥하게 우릴 맞았다. 실내는 1980년대 읍내다방의 그것처럼, 모든 게 낡고 빛바랜 듯했지만 한편으론 정겹기도 했다. 늙은 호박이 장식품으로 놓여있고 여기저기 알록달록한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부대 앞 다방이니 커피, 설탕, 프림을 골고루 넣은 일명 삼박자 커피를 주문했다. 남편은 어느새 35년간의 악몽 사건은 잊어버렸는지 예전 모습 그대로인 그곳에서 펄펄 기운이 나는 듯이 보였다. 오랜만에 손님을 맞이한 주인과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남편은 마치 오래된 친구인 양 부대 안부도 묻고 마을 소식까지 주고받으며 한참을 즐거워했다.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제대기념품도 세월의 흐름이 보인다. 왼쪽은 남편의 고풍스러운 기념패이고 오른쪽은 발랄한 인사말을 새겨 넣은 아들의 기념 모자이다. [사진 홍미옥]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제대기념품도 세월의 흐름이 보인다. 왼쪽은 남편의 고풍스러운 기념패이고 오른쪽은 발랄한 인사말을 새겨 넣은 아들의 기념 모자이다. [사진 홍미옥]

 
힘들지만 반짝거리며 빛났던 청춘이 있던 그곳
갑작스레 가게 된 군부대로의 여행은 우리 집 두 남자에겐 뭔가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두렵고 막연했을 시간이 일 년 혹은 수십 년 후에 뒤돌아보니 살아가는데 버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걸까? 아직도 반짝이는 청춘의 아들 녀석과 한때는 반짝였을 남편, 그리고 그 힘든 시절을 보냈을 모든 이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전국 어느 곳에 있더라도 겨울이면 제일 춥고 한여름엔 제일 더웠을 그곳에서의 시간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군대 하면 생각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역시 세대 차이는 여기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집에 걸려 있는 두 남자의 군 제대 기념품인 빨간 수술이 달린 금색 기념패와 온갖 문구가 재치 있게 새겨진 세련된 모자처럼.
 
선택된 노래는 최백호의 입영 전야와 김광석의 훈련소 가는 길, 서로 자기들이 선택한 노래가 좋다고 난리다. 음~~그렇다면, 두 곡 다 들려주세요!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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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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