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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 만만하게 대했다 큰코 다칠 수 있다

중앙일보 2019.03.18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2019년 1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을 가 역사 바로세우기를 잊지 않겠다며 남은 분들에게 도리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말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만 해서는 안 된다. 『징비록』의 유성룡과 15세기 최고의 외교관 신숙주를 향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은 한·일간에 영원히 적용될 외교지침을 남겼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의 이순신과는 달리, 유성룡은 『징비록』 첫 부분에서 임진전쟁의 전사(前史)를 통해 전쟁 책임의 상당 부분이 조선에 있다고 했다. 그는 『징비록』을 시작하며 성종에게 남긴 신숙주의 유언을 언급했다. “원컨대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화평을 잃지 마소서”(願國家毋與日本失和)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평소 이웃 나라와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과거의 잘못을 징계하고 후환을 조심한다는 징비(懲毖)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유성룡은 이 유언을 소개한 다음, 일본 사절의 조선 측 사신 파견 요청과 그에 대한 조선 측의 무대응,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보낸 사절 소 요시토시(宗義智)의 외교 노력, 히데요시의 분노와 수치를 적고 있다. 유성룡은 히데요시의 분노와 수치가 임진전쟁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됐다고 보고 신숙주의 유언을 언급했음이 틀림없다.
 
신숙주의 유언은 그가 죽기 3년 전쯤 성종에게 지어 바친 『해동제국기』 서문의 요약이다. 그는 서문에서 일본을 이웃 나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린(交隣)과 빙문(聘問)은 풍속이 다른 나라를 위무하고 응접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그 실정을 안 뒤에라야 예를 다할 수 있고, 그 예를 다한 뒤라야 마음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습성이 강하고 사나우며 무기를 잘 다루고 배 타기에 익숙합니다.”(허경진 역)
 
교린은 이웃 나라와의 교제이고, 빙문은 예의를 갖춰 남을 방문하는 것이다. 교린과 빙문은 상대의 실정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실정을 알아야 예의와 마음을 다할 수 있다. 신숙주가 본 일본인의 습성은 “강하고 사납다.” 그래서 위무(慰撫)의 대상이다. 위무할 때 도에 맞게 하면 예로써 응답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략질한다는 말을 이어간다. 지금은 문명이 발전했고 국제 관계가 더 긴밀해졌으니 예의를 좀 어긴다고 침략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은 여전히 무장(武裝)과 해군력에서 뛰어나고 국제정세에 밝다.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한국 구축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논란 등에 대해 일본 시민들조차 국가 간 합의 파기, 국제법 위반으로 보고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개개인의 청구권을 구제해 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을 무효화해 한·일 국교 정상화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보수·진보와 관계없이 쉽게 반일 감정에 휩싸인다. 문제는 반일 감정이 과잉되면 대일 관계에 있어 계산력이 훼손되고, 일본의 영리한 정책에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일본은 절대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북한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일본마저 한국을 적대시하면 한·미·일 안보 공조마저 깨는 치명적 패착이 될 수 있다. 만에 하나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신(新) 애치슨라인이 그어진다면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자유주의 문명 안에서 우리가 이뤄낸 발전은 물거품이 되고, 죽음보다 싫은 예속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전쟁 가능성을 1%라도 떨어뜨리고 싶다면 반일 감정이라는 파토스가 국제법이라는 노모스를 범하게 해서는 안 된다.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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