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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백년 후 ‘오등(吾等)’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2019.03.18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은 논쟁 열기로 후끈했다. ‘백 년 후 오등(吾等)은 누구인가?’ 한국국제정치학회 주최 ‘3·1운동 100주년 특별학술회의’ 종합토론 사회를 맡은 하영선 서울대명예교수가 던진 질문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오등은 자(玆)에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로 말문을 연 독립선언서가 조선인 개개인이 ‘동양평화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으로 나아가는 주체임을 선포했던 까닭이다. 독립선언서는 이른다. “과거 전(全)세기에 연마광양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그리하여, ‘오등은 안전(眼前)에 전개된 신천지로 나서 세계개조의 대기운을 발양하라’고 했다.
 
다시, 지금 이 자리, 오등은 그리했는가? 백년 후 오등은 그리할 것인가?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교수가 받았다. 지금 오등은, 아니 오등을 이끄는 문재인정권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고. 최교수는 문재인대통령의 3·1절기념사에 명기된 ‘친일잔재청산’에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정부주관의 친일잔재청산은 일종의 문화투쟁인데, 가능하지도 않고, 역사를 정치적 관점으로 좁혀 해석하는 발상이다. 관제민족주의다.’ 말하자면, 2019년 오등은 다성(多聲)적 민족주의를 특정 스펙트럼에 끼워 맞추려는 정권의 행보로 소모적 이념 투쟁에 내몰려 있다는 뜻이다. ‘착오상태를 개선광정하려 신천지로 나서는 오등’을 막아선다!
 
너무 나간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좌든, 우든, 제도정치를 우회해 운동정치를 앞세우는 어떠한 정치적 시도에도 경고를 서슴지 않았던 최교수의 소신 발언이었다. 토론자인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보가 나서 최교수의 발언이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완곡하게 지적했다. 필자는 친일청산보다는 작금의 적폐청산에 초점을 맞춰 논쟁에 가세했다. “적폐청산은 과거 백년 간 배양된 ‘정치적 국민’의 관점에서 ‘다성적 시민’을 공격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이다. 이쯤 되면, 3·1운동의 존귀한 정신의 죽비로 현정권을 내리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일본)를 질축 배척함’이 아니라, 일대 각성을 통해 ‘정경대원(正經大原)으로 귀환’케 한다는 3·1운동의 평화사상에 이르면 적폐청산이 초래할 부정적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밤늦게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찬찬히 훑어봤다. 최교수의 염려와는 사뭇 다른 진취적 내용들이 천명되어 있음은 뜻밖이었다. 민주화 이후 나온 기념사 중 가장 잘된 것이라는 생뚱맞은 생각도 들었다. 특히 친일잔재청산이 그랬다. ‘친일은 반성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로부터 정의와 공정한 나라가 시작된다는 구절이 그렇다. 기념사는 ‘현실적 척결’보다 ‘정신적 청산’을 주장하고 있었다. 내면의 광복!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3·1운동의 정신적 죽비를 내리칠 까닭을 잃었다. 새로운 백년의 발걸음을 내딛는 연대적 각성의 멋진 선언이다. 그렇다면, 거의 2년을 끌어온 적폐청산은 왜 현실적 척결인가. 정신적 청산과 미래 구상은 어디로 갔는가?
 
다시 묻자. 지금의 오등은 관용과 대의(大義)의 바다로 나갔는가? 백년 전 오등은 민족 자립을 말살한다 하여 ‘일본의 소의(少義)함을 책’하지 않았다. ‘고식적 위압과 양 민족의 원구를 날로 심하게 한다’하여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하려 하지 않았다. 일깨워 공명정대의 대초원으로 같이 가게 함이었다. 그러했는가? 날로 악화되는 대일, 대중관계는 그들의 소심(小心)과 자기변호를 익히 알고 있는 오등이 대부(大夫)적 인식지평을 펼치지 못한 소이(所以)아닌가?  ‘혁신적 포용국가’임을 천명하고도 배척과 유배를 서슴지 않고, 포용 대상인 하위계층을 되레 빈곤과 실업의 절망에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웬일인가?
 
이게 지금 오등의 초라한 모습이다. 백년 후 오등은 어떠해야 할까? 독립선언서가 오등의 갈 길과 민족심리의 방향을 지정한다. ‘진정한 이해와 동정으로 우호적 신국면을 만들어 동양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맞게 됨을 막아라!’ 그러나 정확히 20년 후, 동양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휘말렸고, 그 유산 속에 여태 갇혀 있다. 미래의 오등은 여전히 서로 어긋난 군사동맹선(한미일)과 역사동맹선(한중)에 포획된 영토에 살 것이다. 즉 군사대치선과 역사대치선이 엇갈린 내부 영토가 오천만 오등의 주거지다. 독립선언서는 묻는다. ‘아(我)의 자족한 독창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지난 백년간 원구(怨溝)로 가득 찬 민족주의를 우선 버릴 일이다. 중국발 미세먼지에도 민족주의적 분노를 표출하고, 일본의 위선에 기탄을 주저하지 못한다면, 원화소복과 공존공영의 동양평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적 굴기를 방지할 임무가 향후 백년 오등의 역사적 대임이다. 독립선언서는 오등에게 명한다. ‘정치적 국민’에서 ‘상호공생적 시민’으로, 더 나가 세계시민으로 진화하라고.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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