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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눈감은 여권의 대북 인식

중앙일보 2019.03.18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010년 한 기고문에서 박왕자씨 피살 사건을 ‘통과의례’라고 규정하면서 “어차피 겪어야 할 사건이라면 차라리 일찍 겪는 게 낫다”고 주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 초병의 총격을 받아 숨진 박씨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려는 자세는 북한 전문가인 김 후보자의 뇌리에 애초부터 없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는 2년 뒤 한 세미나에서“박씨 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시일이 흘러 진상조사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발언했다.
 
이는 김 후보자가 각료로서의 기본 자격을 갖췄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발언이다. 무릇 정부 각료의 최우선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때로는 전략적 대북 접근이 필요한 통일부 장관이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김 후보자는 박왕자씨 사건에 대한 발언뿐 아니라 대북 정책의 방향 및 한반도 정세에 관한 인식 전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여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의원의 발언도 크게 우려스럽다. 추 의원은 17일 유튜브 방송에서 “대북 제재는 핵 차단을 위한 제재와 징벌적 제재로 나눌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핵 원료나 핵무기 제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목적의 제재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핵과 관련이 없는 징벌적 제재는 금광산 관광 제재나 개성공단 폐쇄에 한해 제재 완화를 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설득 외교가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격 단행된 조치다. 국제사회의 제재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나간 독자 제재에 대해 당시에도 성급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이 두 차례 더 핵실험을 하고 연달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이후 국제사회는 초강력 제재만이 북한의 질주를 막을 수 있다는 공동 인식에 도달했다.
 
더구나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협상의 존폐가 기로에 선 지금은 제재 완화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을 초강력 제재의 결과로 보는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하는 것은 한·미 공조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핵과 관련이 없다는 논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돈줄을 차단해 핵·미사일 자금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와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추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의 광물·수산물 수출까지 막고 북한인의 해외 취업까지 규제하는 현행 유엔 제재의 정당성, 나아가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정부 결정부터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향후 한국의 역할에도 큰 숙제를 남겼다. 상황이 달라지면 정책도 유연하게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나 여권 관계자들의 자세나 발언은 이런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준다. 지금은 일련의 비핵화 협상 과정을 찬찬히 복기하면서 북한의 의도를 다시 읽고 우리의 정책 방향을 냉철하게 재정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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