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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왜 바둑 '기보' 한 장 남기지 않았을까

중앙일보 2019.03.17 12:00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2)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진 호주 멜버른은 도시의 건물이 신구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진 호주 멜버른은 도시의 건물이 신구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진 호주의 멜버른은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도시의 건물이 신구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 건물을 지을 경우 기존의 건물과는 다르게 디자인을 하도록 권한다고 한다. 성냥갑처럼 비슷한 건물을 늘어놓으면 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멜버른에서는 각양각색의 건물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여행거리다. 다양성을 살려 도시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한국인은 다양성을 좋아하는 국민일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마 그 반대일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하나로 보려는 ‘단일적 사고’에 익숙하다. 단일민족이라는 의식도 강하다.
 
단일적 사고의 예를 하나 보자. 중국에서 귀화한 한 여성이 중국인을 끌려면 마작대회를 열라고 했다. 마작은 중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놀이이니 이것을 상품화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몇 사람에게 마작에 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대부분 도박이라고 대답했다.
 
마작, 중국선 두뇌게임이 한국선 도박
일본과 중국 등 여러나라에서는 마작을 두뇌게임, 건강 레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박이라고 경원시한다. [중앙포토]

일본과 중국 등 여러나라에서는 마작을 두뇌게임, 건강 레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박이라고 경원시한다. [중앙포토]

 
고스톱처럼 돈을 걸고 한다면 도박성 있는 게임이 분명하다. 골프나 바둑 같은 경기도 내기를 크게 하면 도박이다. 하지만 마작을 도박으로만 치는 것은 좀 단순한 관점인 것 같다. 수억의 중국인이 애호하는 놀이 문화이고 동양적 운치가 담긴 게임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여학교나 대학교에서 마작대회를 열고, 마작신문을 발행하기도 한다. 노인은 건강에 좋다며 건강마작대회를 연다.
 
일본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마작을 두뇌게임, 건강 레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박이라고 경원시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마작을 건전하게 활용하거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 개발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못 한다.
 
바둑에서도 우리나라는 단일적 사고를 보여준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바둑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까지 바둑의 수순을 기록한 기보 한장 남겨져 있지 않다. 바둑책을 쓰거나 바둑이론을 정립한 것은 더더욱 없다. 그나마 바둑에 관한 기록을 남긴 이는 성웅 이순신 장군이다. 『난중일기』의 10여 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다른 장수나 지방관들과 바둑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둑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것은 바둑 강국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의 입장에서 참으로 아쉽다. 우리 조상은 왜 바둑에 관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둑을 ‘놀이’로만 보는 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명나라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가노 에이토쿠가 스크린페인팅으로 그렸다. [사진 위키미디아커먼]

명나라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가노 에이토쿠가 스크린페인팅으로 그렸다. [사진 위키미디아커먼]

 
이것은 중국과 대조가 된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망우청락집』, 『현현기경』 같은 바둑책이 나왔고 주옥같은 묘수풀이도 개발했다. 또한 ‘기경 13편’이라는 바둑이론도 정립했다. 중국인은 바둑을 놀이로 보면서도 다른 가치를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에서 와서도 한국인은 바둑이 스포츠냐, 예술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외국에서는 이런 논쟁이 없다. 우리는 어느 하나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단일한 사고에 의한 ‘기능적 고착’
위에 든 몇 가지 예처럼 사물을 한 가지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일한 사고로 인해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기능적 고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지팡이를 길을 걸을 때 의존하는 보조기구로만 생각하면 다른 용도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지팡이가 어떤 상황에서는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당기는 도구가 될 수 있고, 길을 가다가 동물을 만났을 때 호신용으로 쓸 수 있다. 또한 지팡이 끝에 마분지 등을 씌우면 임시 우산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각적인 용도로 쓰려면 다면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지팡이가 걷기 보조도구 이상의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자신의 존재나 역할 등에 대해 어느 하나로 특정하지 말고 다면적 사고를 해 보자. 분명히 색다른 묘수가 보일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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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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