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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잘못 맞아 다리 절단···빙판 위 펄펄 나는 '평창 영웅'

중앙일보 2019.03.16 11:00
지난해 3월 17일 평창 겨울패럴림픽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장애인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던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1:0의 승리로 동메달을 확정 짓던 순간 대한민국팀의 주장 한민수는 차가운 빙판 위에서 그 누구보다 크게 울음을 토해냈다. 19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는 그의 국제무대 마지막 경기였다. 
그리고 꼭 1년이 지난 지금, 한민수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장애·비장애 하나 된 빙판 꿈꾸는, 패럴림픽 영웅 한민수

 
한민수 선수가 강원도청 아이스링크에 경기 장비 등과 함께 동메달을 깨물고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원도청 져지, 근육롤러, 숄더패드, 엘보패드, 하키팬츠, 썰매, 스틱과 퍽, 지난 평창 겨울패럴림픽의 성화봉,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글로브, 넥가드, 헬멧. 장진영 기자

한민수 선수가 강원도청 아이스링크에 경기 장비 등과 함께 동메달을 깨물고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원도청 져지, 근육롤러, 숄더패드, 엘보패드, 하키팬츠, 썰매, 스틱과 퍽, 지난 평창 겨울패럴림픽의 성화봉,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글로브, 넥가드, 헬멧. 장진영 기자

 
한민수는 두 살 때 침을 잘못 맞은 뒤로 왼쪽 다리를 쓸 수 없었다. 그러다 서른 살에 염증이 심해져 결국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 다리가 없어 의족에 의지한다. 평소에는 남들보다 조금 느린 걸음이지만 빙판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한다.  
한민수 선수가 썰매와 헬멧 등을 들고 은퇴 후 약 10개월만에 강원도청 아이스링크에 섰다. 장진영 기자

한민수 선수가 썰매와 헬멧 등을 들고 은퇴 후 약 10개월만에 강원도청 아이스링크에 섰다. 장진영 기자

 
 
휠체어 농구, 좌식 배구, 역도 등을 거쳐 장애인 아이스하키에 입문했다. 많은 장애인이 그렇듯 그도 운동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는 썰매 하키라고도 불린다. 썰매를 탄다는 점만 빼면 일반 아이스하키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998년 故 이성근 감독이 들여왔다. 한민수는 이 감독이 만든 클럽팀 ‘서울 연세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돈을 받는 운동선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내와 두 딸을 생각하면 일을 쉴 수가 없었어요. 운동에만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평일에는 직장에 출근하고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운동에 매달렸어요. 링크 대관이 힘들어 자정 이후에 연습하기도 했고, 주말엔 다른 클럽팀들과 경기를 이어갔죠”  
 
평창 겨울패럴림픽에서 가족들과 함께. 왼쪽부터 둘째딸 한소연, 부인 민순자, 한민수 선수, 큰딸 한소연. [사진 한민수]

평창 겨울패럴림픽에서 가족들과 함께. 왼쪽부터 둘째딸 한소연, 부인 민순자, 한민수 선수, 큰딸 한소연. [사진 한민수]

 
지난 2006년 강원도청에서 창단한 장애인 아이스하키팀은 그에겐 기회였다. 생활비 걱정 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나이 서른여섯에 드디어 월급 받고 운동하는 선수가 된 것이다. 강원도청팀은 지금까지도 국내 유일 실업팀이다. 확실한 지원으로 실력은 날로 늘어갔다. 창단 2년만인 2008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B-POOL(장애인 아이스하키는 국제경기 성적에 따라 A/B/C 3등급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이후 A-POOL로 승격됐다) 에 참가해 전승으로 우승했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패럴림픽에도 참가했지만, 각각 6, 7위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소치에서 한민수는 다짐했다. 다음번 평창에서는 꼭 메달을 따자고. 당시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라 주변에서 은퇴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10여년간 하던 주장직도 내려놓고 운동에만 전념했다. 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최종 봉송주자로 한민수 선수가 점화대로 오르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최종 봉송주자로 한민수 선수가 점화대로 오르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년 평창 겨울 패럴림픽. 운명의 무대에서 대한민국팀은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개막전 일본을 상대로 4:1로 승리하고 조2위로 4강에 올랐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3, 4위 결정전을 맞이했다. “경기가 계속될수록 신기하게도 더 힘이 생겼어요. 팀에 다친 선수도 없었고요. 관중들이 보내주는 관심이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그 함성에서 힘을 얻었어요. 골을 먹으면 ‘괜찮아!’하고 격려해주고,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그동안 관심 부족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 함성 때문에 지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동메달을 확정 지었다. 패럴림픽 참가 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빙판으로 내려와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리고 “수고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동메달을 결정지은 순간 한민수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동메달을 결정지은 순간 한민수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 후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수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 후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수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한민수는 평창 겨울패럴림픽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스틱 잡고 싶은 생각이 안들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어요. 동료들과 서로서로 믿었기에 가능했던 거고 이제부턴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 중입니다”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동메달 시상식에서 힌민수 선수(가운데)가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동메달 시상식에서 힌민수 선수(가운데)가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은퇴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년 가까이 운동하면서 보니 장애인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팀에서도 맏형이다 보니 제가 선구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명감을 가지고 미국에 갔습니다. 감독으로 금메달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자격을 갖췄지만, 현재로써는 그가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팀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민수 선수는 "강원도청 외에 또다른 실업팀이 창단되어 지도자로 링크에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한민수 선수는 "강원도청 외에 또다른 실업팀이 창단되어 지도자로 링크에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강연가로도 활동 중이다. 은퇴 후 여러 기관에서 약 30여 차례 강연했다.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웅크리고 있지 말라고. 장애는 스스로 받아들여야 극복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집중했어요. 몸에 힘이 생기니 자신감도 넘치게 됐죠. 스스로 세상에 부딪혀야 합니다”  
 
 
요즘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선진 아이스하키를 연수하며 경험한 것들을 장애, 비장애를 가리지 않고 나누고 싶어한다. “미국 연수 중에 유소년과 성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운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빙판 위에서는 모두 같이 어울려서 운동할 수 있는 거잖아요? 평창 겨울패럴림픽때 받았던 많은 관심과 사랑이 사그라지는 게 아쉽습니다. 제가 배운 경험을 경계 없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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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