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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역사 ‘평양 숭실’ 재건…남북 교육 교류 이끌겠다

중앙선데이 2019.03.16 00:58 627호 2면 지면보기
[양영유의 총장 열전] 황준성 숭실대 총장
서울 상도동 숭실대 캠퍼스 본관 앞에는 세 개의 깃발이 펄럭인다. 중앙에는 태극기, 그 좌우에는 평양 숭실대와 서울 숭실대 깃발이다. 숭실대는 국내 유일의 이산(離散) 대학이다. 고향이 평양이다. 1897년 선교사 배위량(W.M. Baird) 박사가 대동강변에 설립한 숭실학당이 모태다. 1908년 4년제 대학으로 인가받았으나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했다. 그런 아픔이 있는 숭실대는 1954년 서울에서 다시 개교했다. 평양 숭실대 재건을 꿈꾸며 세 개의 깃발을 게양하고 있는 까닭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린 지난해에는 ‘평양 숭실 재건추진위원회’까지 발족했다. 그렇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 북핵 문제는 안갯속이다. 격변의 정세를 바라보는 황준성(65) 총장의 심정은 어떨까? 독일 유학 시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한 그는 “철저히 준비하며 천천히 서두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양 숭실 재건과 함께 숭실대를 미국의 ‘뱁슨 칼리지(Babson College)’처럼 창업이 강한 ‘한국판 뱁슨’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그를 12일 만났다.
 

이산 대학
대동강변에 설립 숭실학당이 모태
김정은의 증조부 김형직도 다녀

남북 교류
북핵 문제와 민간 교류 별개로 봐야
평양 김형직 사범대학과 MOU 계획

통일 교육
신입생 필수 교양에 통일 과목 개설
통일부서 통일선도대학으로 선정

창업 특화
넥타이맨보다 창업·창직이 더 중요
미국의 ‘뱁슨 칼리지’처럼 만들 것

 
평양 숭실대 캠퍼스의 옛 모습을 복원한 조형물 앞에 선 황준성 총장은 ’통일이 되면 평양이 본교, 서울이 분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평양 숭실대 캠퍼스의 옛 모습을 복원한 조형물 앞에 선 황준성 총장은 ’통일이 되면 평양이 본교, 서울이 분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의 통일 현장 목격
 
한반도 정세와 평양 숭실 재건 계획이 맞물리는 것 같다.
“북핵 문제와 교육·민간 교류 문제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 흔들리는 변수로 보지 말고 상수로 보자는 얘기다. 총장 입장에선 교육·체육 교류부터 활성화 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현장은 어땠나.
“1989년 11월이었는데 감동적이고 뭉클했다. 베를린 장벽은 베를린 자유대 기숙사에서 불과 800~9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요란한 함성이 들려 뛰쳐나가 보니 사람들이 장벽 위로 올라가 곡괭이로 깨고 있더라. 순간, 38선과 북한 동포가 어른거렸다. ‘통일이 이렇게도 올 수 있구나. 우리도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집무실 벽의 액자를 가리켰다. 조그만 돌이 들어 있었다. 뼛속까지 ‘숭실인’을 자처하는 황 총장은 그 돌이 평양 숭실 재건의 자극제라고 했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엘베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엘베강은 독일 중동부에 위치한 드레스덴시를 끼고 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심의 90%가 폐허로 변한 드레스덴은 통일을 기점으로 첨단 산업도시로 거듭났다. 엘베강의 기적이란 용어가 생긴 사연이다.
 
현 시점에서 독일에게 배워야 할 점은.
“3통(通) 정책, 즉 통상(경제)·통행(인적)·통신(문화) 교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독일은 1970년 제1차 정상회담 기준으론 20년 만에 하나가 됐다. 통일 성과를 보는 데는 25년이 걸렸다. 우리는 최소 배를 더 곱해야 한다. 최소 50년이다. 독일처럼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북한을 끌어안고 통일비용을 감당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황 총장은 30년 전 장면이 떠오르는 듯 숙연했다. “통일은 우리의 소명이다. 122년 숭실 역사의 10만 동문이 저마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숭실대가 왜 통일을 이끌 대학인가.
“뿌리가 평양에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는 ‘숭전농학과 제2회 졸업생 기념수 1935년 3월(崇專農學科 第二回 卒業生 紀念樹 一九三五, 三月)’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식 수석이 남아 있다. 김정은의 증조부인 김형직이 1911~1913년 다닌 기록도 있다. 그래서 평양의 김형직 사범대학과 양해각서(MOU)를 맺으려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평양 숭실 재건추진위’도 출범했다. 5개년 로드맵에 따라 실행위원회를 가동 중이다. 통일 전에는 평양 분교·서울 본교, 통일 후에는 평양 본교·서울 분교가 기본 개념이다. 재건기금도 마련돼 있다. 적지 않다.”
 
통일 교육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국내 대학 최초로 신입생 교양 필수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목을 개설했다.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한다.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과 기독교통일지도자 훈련센터,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도 만들었다. 그런 점을 평가받아 통일부가 통일선도대학으로 선정했다.”
 
통일에 대한 지론을 말하던 황 총장은 숭실대의 최대 강점은 정보기술(IT)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창학 정신인 실사구시(實事求是) 부활과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 그리고 IT 강점을 접목한 창업 특화에 미래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보여준 박제된 1등 인재상으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설명이다.
 
숭실대가 창업과 IT에 강한 배경이 있나.
"평양 숭실이 그 시작이다. 1902년에 T자형 공장인 기계창(機械廠)을 지어 학생들에게 목공·철공·주물 등 전문기술을 가르쳤다. 일종의 산학협력 모델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IBM 컴퓨터를 들여와(1969년) 전자계산학과를 신설한 것도 프론티어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중소기업대학원(83년), 정보과학대학원(87년), IT대학(2005년) 등 최초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최초’가 ‘최고’로 이어지진 못한 것 같다.
"자기반성의 고백이 필요한 부분이다. 최고로 만들어낼 마스터플랜이 없었던 것도 원인일 것이다. 4차 혁명시대엔 달라질 것이다. 스펙 관리 모범생 시대, 간판주의 시대는 끝났다. 창의력을 갖춘 협력하는 괴짜가 필요한 시대다. 에디슨같이 계란도 배에 품어보는 괴짜, 실패해도 포기 않는 도전자,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펭귄을 키우려 한다.”
 
그런 인재를 키우려면 교육시스템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무엇을 바꾸고 있나.
"2년 전부터 DIY(자기설계융합 전공)를 도입했다. 학생 스스로 교과목을 구성해 학교 승인을 받고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교류 대학까지 가능하다. 그랬더니 사물인터넷 네트워크, 과학철학, 유비쿼터스 의공학 등 다양한 전공이 개발됐다. 지식은 온라인에 다 있다. 그래서 수업을  프로젝트 중심 교육(Project Based Learning), 또는 문제해결 중심 교육(Problem Based Learning)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야 4C가 생긴다.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소통능력(Communication), 협업능력(Collaboration)이다.”
 
122년 역사의 숭실대를 한국의 뱁슨 칼리지로 만들겠다는 의미는.
"샐러리맨보다 창업(創業)·창직(創職)이 더 필요한 시대다. 뱁슨 칼리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MIT대와 하버드대의 틈새 수요를 파고들었다.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뱁슨을 더 많이 찾는다. 그렇게 만들려 한다.”
 
뱁슨 칼리지는 1919년 창업과 경영,  앙트레프레너쉽(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 교육에 초점을 맞춰 설립된 사립대다. 전교생이 23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경영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미국 포브스지 등이 경영전문대학원(MBA) 최고 우수대학으로 선정했다. 21년 연속이다. 졸업생 창업 비율이 17%로 스탠퍼드대(13%)·하버드대(7%)·컬럼비아대(5%)보다도 높다.
 
기업가 정신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번 학기부터 3000명 신입생 전원이 ‘기업가 정신’ 과목을 배운다. 창업 교육의 결정체다. 온라인을 통한 사전 강의와 실습이 동시에 이뤄진다. 아이디어 경진대회도 열 예정이다. 대표 브랜드인 ‘7+1’ 도전 학기제도 활성화하고 있다. 7학기는 수업을, 1학기는 자유롭게 인턴십·해외연수·현장실습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부딪히다 보면 실력도,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교육부, 포지티브 대신 네거티브 정책 펴야
 
창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 어려워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타트업 펌프 벤처 스튜디오’를 열었다. 교원들이 상주하며 상담해준다. 45개 전공 중 32개에는 캡스톤 디자인을 적용했다. 한 학기 동안 팀을 만들어 작품 기획에서 제작까지 전 과정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내년까지 모든 학과에 도입한다. 전공 칸막이가 사라지는 융·복합이 일반화되는 것이다.”
 
황 총장은 시스템을 바꾸려면 교육부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안 된다고 하는 것만 제시하고 모든 걸 자율에 맡겨달라. 대학을 믿어야 한다. 부도덕한 대학이 있다면 엄벌하면 된다. 그게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황 총장의 제안이다.
 
‘교육은 사람이다, 배워서 남 주자’ 철학
황준성 총장은 부드러우면서도 꼿꼿했다. 캠퍼스 안에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과 재학생 창업 상담 공간인 ‘스타트업 펌프 벤처 스튜디오’를 돌며 122년 숭실대 역사와 미래를 자상하게 설명했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기독교 집안의 외동인 그는 학군장교(ROTC)로 군 복무를 마쳤다. 장호성 단국대 총장은 동기(16기), 한국외국어대 김인철 총장은 후배(18기)다. 기업체를 2년간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독일어를 공부해 1982년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격동의 독일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한반도 통일과 평양 숭실대 부활을 소명으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념 삼아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교육은 사람이다. 배워서 남 주자. 타인을 섬기자’는 교육철학과 섬김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
 
1954년 대구 출생. 78년 숭실대 경제학과, 88년 베를린 자유대 경제학 석사, 92년 경제학 박사(비교경제, 정치경제학). 93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교무처장·학사부총장, 2017년 2월 총장.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yangyy@joongang.co.kr 
 
※총장 열전은 크로스미디어로 진행합니다. 17일 발행되는 월간중앙 4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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