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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핵심은 경청…북핵·과거사 갈등 역지사지로 풀어야

중앙선데이 2019.03.16 00:31 627호 12면 지면보기
[박신홍의 人사이드]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사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사는 열정이 넘쳤다. 지한파로 꼽히는 그는 시민들과 자주 접하기 위해 평소 버스와 지하철을 애용한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사는 열정이 넘쳤다. 지한파로 꼽히는 그는 시민들과 자주 접하기 위해 평소 버스와 지하철을 애용한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미하엘 라이터러(Michael Reiterer·65) 주한 유럽연합(EU)대사는 한국에 주재하는 외교관 중 최고령 베테랑에 속한다. 1981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38년간 한길을 걸어왔다. 한국과의 첫 인연도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대사로 부임한 뒤엔 정부 관료는 물론 일반 시민·학생들과도 활발히 소통하는 등 국내 외교가에서 손꼽히는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비핵화 문제
톱다운 방식, 정상 악수만으론 부족
전문가 검증, 외교적 대화 선행돼야

과거사 갈등
유럽은 가해자 고백, 무릎 꿇고 사죄
과거는 잊지 않되 미래로 나아가야

한·EU 협력
FTA 8년 만에 교역량 50% 늘어
과학기술 대화 채널도 새로 마련

외교관 38년
한국과 20년 인연, 출퇴근도 버스로
시민·학생과 소통 공공외교 늘릴 것

오스트리아 출신이란 점도 그가 한국에 친근감을 갖는 이유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형적 여건 속에서 숱한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가 북핵 문제와 한·일 과거사 청산 논란에 관심이 많은 것도 EU대사라는 공식 직함에 이 같은 개인적 배경이 더해져서다. 또한 EU는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 4강 못지않은 역할과 책임을 맡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베테랑·지한파·EU라는 공약수를 가진 그의 얘기를 듣고 싶었던 까닭이다. 지난 12일 주한 EU대표부에 들어서자 하얀 구레나룻에 환한 미소를 띤 노신사가 먼저 악수를 청해 왔다.
 
 
EU 협상 노하우 풍부 … 북핵 문제 도울 용의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사가 지난해 8월 방한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판문점 도보다리를 찾아 환담하고 있다. [사진 주한 EU대표부]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사가 지난해 8월 방한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판문점 도보다리를 찾아 환담하고 있다. [사진 주한 EU대표부]

한국과는 어떻게 연을 맺게 됐나.
“17년간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1998년 EU로 자리를 옮겼는데 처음 맡은 업무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였다. 마침 2000년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벨기에 브뤼셀의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 긴밀히 협력하게 됐다. 그때 사귄 친구들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5월 9일이 유럽의 날이라 매년 전 세계에서 축하 리셉션이 열리는데, 마침 부임 후 첫 기념일에 대선이 치러져 어쩔 수 없이 날짜를 연기해야 했다. 장소도 새로 잡아야 했는데 이때도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웃음).”
 
그때와 지금의 한국을 비교하자면.
“2000년 방한했을 때 코엑스 주변은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고층 건물은 아셈타워와 호텔뿐이었다. 도심 고궁과 공원도 관리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 대한 국제적 평판도 몰라보게 좋아졌고. 딸도 한국을 너무 좋아해 종종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내가 직접 차를 몰고 함께 전국을 여행하곤 한다. 한국의 숨겨진 모습을 최대한 많이 접하고 싶어 가급적 국도나 작은 도로를 애용한다.”
 
그는 “부임 후 2년간 촛불집회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정상회담 등 유독 크고 굵직한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고 회고했다. 곁에서 지켜본 소감이 궁금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2주 연속 주말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탄핵이 발표될 때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있었는데, 자칫 폭력시위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증거다 싶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북핵 이슈로 넘어갔다. “알다시피 2017년은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EU도 ‘대사관 직원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평창 올림픽을 통한 스포츠 외교가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됐다. 서독과 동독도 1964년 제 고향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겨울올림픽 때 사상 첫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화해의 물꼬를 텄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역사를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
 
북핵 문제에 대한 EU의 기본 입장은.
“EU는 오랫동안 ‘비판적 관여 정책(policy of critical engagement)’을 유지해 왔다. 상대에게 압력을 가하면서도 단지 압력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대화와 외교적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정책이다. 따라서 대북제재도 외교적 대화를 가속화하는 데 도움이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드디어 한반도에서 시작됐고 회담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는 ‘전쟁 대신 대화’라는 EU의 철학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EU는 이 같은 외교적 노력과 절차를 계속 지지할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부분의 경우 실무 단계에서 협의가 이뤄진 뒤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이번엔 반대였다. 톱다운 방식에 따라 일단 회담은 잡혔는데 이후 실무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사전 준비가 미흡했다. 핵·미사일은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만큼 전문가 차원의 논의·검증과 외교적 대화·협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하노이 회담이 시사하는 바도 이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는 것 아니겠나.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두 정상의 악수만으론 성과를 낼 수 없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U가 생각하는 돌파구는 뭔가.
“EU는 2016년부터 아시아의 안보를 강조하는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특히 한국의 3대 교역 파트너이자 최대 투자국으로 한반도 문제에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란·동유럽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협상 경험과 분쟁 해결 노하우도 축적해 놓고 있다. 그런 만큼 남북한과 미국이 검증 작업 등을 본격화할 경우 EU도 기꺼이 도울 용의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이 개방하고 비핵화를 완성하면 EU도 대북 교역과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평가는.
“일단 평화로운 대화를 계속 추진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도 북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나. 선의는 실질적 행동과 해결책이 도출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세대가 다른 남북의 두 정상이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EU는 이런 동력이 유지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한·EU FTA, 현실에 맞게 개정 필요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 라이터러 대사. [사진 주한 EU대표부]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 라이터러 대사. [사진 주한 EU대표부]

오스트리아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1918년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는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제국은 망하고 소국이 돼버렸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개방 정책을 적극 펼치면서 경제가 살아났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 한국도 이와 흡사한 면이 적잖다. 북한도 폐쇄된 국가다 보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아니겠나. EU와 오스트리아의 성공 전략인 개방성이 북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과거사 갈등이 여전하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오랫동안 ‘우리가 나치의 첫 번째 희생양’이란 입장을 견지했다. 이후 91년 정부 차원에서 ‘우리도 나치 활동에 가담했다’고 인정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임을 처음 고백하게 됐다. 무려 46년이나 걸렸지만, 이런 솔직한 고백 이후 비로소 인접국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도 폴란드 바르샤바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지 않았나.”
 
외교관답게 일본의 태도를 에둘러 비판한 그는 그러면서도 ‘미래’를 강조했다. “과거의 역사를 묻어두거나 잊자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나도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럽 출신인 만큼 한국인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얼마 전엔 영화 ‘항거’도 관람했다. 하지만 오늘의 유럽은 항상 미래 지향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얘기만 했다면 아마 끝이 없었을 거다. 더욱이 지금 한국은 100년 전과 달리 세계적인 경제 강국 아닌가.”
 
한·EU 협력 발전 방안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EU와 3개 주요 협정을 모두 맺고 있는 나라다. 정치 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안보 협정을 통해 소말리아 인근 해적 소탕 작전도 함께하고 있다. 한·EU FTA는 체결 8년 만에 교역량 50% 증가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그 사이 전자상거래 등 보완해야 할 분야가 크게 늘어난 만큼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유럽에서는 ‘인더스트리 4.0’으로 부르는데 개념은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한·EU 대화 채널도 새로 마련했다. 과학기술 연구 분야가 대표적이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 지원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2020’에 한국 연구소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평창 올림픽 때 소개된 5G 기술도 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개발된 거다.”
 
 
은퇴 전 평화협정 지켜보는 게 꿈
 
라이터러 대사는 “한국인들과의 만남이 늘 즐겁고 새롭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출퇴근 때도 관용차 대신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서울 생활은 어떤가.
“버스는 물론 지하철도 종종 탄다. 서울은 외교관들에게도 매우 흥미진진한 도시다.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주말엔 사대문 주변의 산에 오르곤 한다. 매운 음식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을 꼽자면 최근의 대기오염이랄까(웃음).”
 
최근 공공외교 대사상도 받았는데.
“1980년대 초 아프리카에 근무할 때는 컴퓨터도, 팩스도 없어서 본국과 소통하려면 텔렉스에 의존해야 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EU 외교장관이 수시로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니 대사 역할도 바뀌어야 했다. 한국인들을 직접 만나 상호 이해를 높이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 중 하나가 ‘EU goes to school’이다. EU 28개 회원국 대사들이 매년 3개 중·고등학교씩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러면 1년에 6000명 이상의 한국 학생을 만나는 셈이다. 전통 외교와 달리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이 같은 공공외교의 확대가 21세기 새로운 외교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38년 경험에 비춰 외교를 정의하자면.
“외교란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문화외교 맥락에서 볼 때도 외교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경청이 더 중요하더라. 이를 통해 역지사지하면 상대의 행동 양식을 이해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핵 문제나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핵심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거다. 외교관을 꿈꾸는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8월에 여기서 은퇴하는데, 이후에도 한·EU 인적 교류 확대에 계속 기여하고 싶다. 한 가지 희망 사항이 있다면 한국을 떠나기 전 한반도 평화 체제가 영구적으로 정착되는 걸 지켜보는 거다. 제 임기 중에 평화협정 체결식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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