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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스캔들 이은 거짓말 후폭풍…공든 K팝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2019.03.15 14:09
15일 오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빅뱅 출신 승리와 가수 정준영. [연합뉴스]

15일 오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빅뱅 출신 승리와 가수 정준영. [연합뉴스]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빅뱅의 승리(본명 이승현ㆍ29)가 운영해온 클럽 폭행사건에서 시작된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가 가요계 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국 가수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가수 정준영(30), 하이라이트 용준형(30), FT아일랜드 최종훈(29), 씨엔블루 이종현(29)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수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고, 성매매 알선이나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 등 명백한 범죄행위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요계 전체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류 20년 성과…섹스 스캔들에 흔들려
K팝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2000년 H.O.T.가 중국 베이징에서 첫 단독 공연을 하며 등장한 ‘한류’가 올해 방탄소년단이 9만석 규모의 영국 웸블리에서 공연하기까지 세계적 규모로 성장하는데 20여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근 한 달 사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앨범으로 두 차례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다음달 코첼라 페스티벌에 오르는 블랙핑크, 월드투어를 시작하는 몬스타엑스 등 줄줄이 예정된 해외 스케줄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외신은 비판적 논조의 보도를 쏟아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섹스 스캔들에 흔들리는 K팝’이라는 기사에서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연예계는 어린 스타들의 삶에 일일이 관여하며 조율하기로 악명이 높다”며 “인기 있는 노래와 안무는 그들이 도덕 교육을 받을 시간을 희생해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팝의 선전 이유로 꼽던 한국형 아이돌 양성 시스템과 상당한 연습량이 그대로 비판 근거가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연관 지어 분석하는 강도 높은 비판도 이어졌다. 영국 BBC는 정준영 은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최근 한국에서 ‘몰카’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몰카 신고만 6000건 이상”이라고 전했다. 미국 CNN은 ‘커져 가는 한국 섹스 스캔들에 등장하는 K팝 스타들’이라는 기사에서 지난해 혜화역과 광화문 등에서 이어진 여성 시위에 등장한 ‘나의 삶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수만 명의 여성이 몰카와 성범죄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퇴, 해체해도 YG와 FNC 브랜드 타격
이는 장기적으로도 K팝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차례로 은퇴와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발표했지만, 리스크는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빅뱅 승리의 소속사였던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15일 기준 3만5000원 선까지 떨어졌다. 승리가 은퇴를 발표한 11일 하루 만에 시가총액 1109억원이 줄어든 이후에도 계속 하락해 현재 6520억원 수준이다. 2018년 연결기준 매출액은 2858억원으로 2017년 3498억원 대비 18.3% 하락한 데 이어 올해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다. 2011년 상장 이듬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1조원을 넘겼을 때와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첫 보도 당시 “조작된 문자 메시지”라고 반박했던 내용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지드래곤ㆍ탑 등 마약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회사 자체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도 위협요인이다. 2006년 데뷔 이후 YG의 캐시카우로 활동해온 빅뱅 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의 활동에도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상반기 예정된 트레저13의 데뷔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최근 ‘뚜두뚜두’ 뮤직비디오로 K팝 그룹 최초로 유튜브 조회 수 7억 뷰를 달성한 블랙핑크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나는 K팝 팬이 아니다. 블랙핑크를 정말 사랑할 뿐”이란 글이 ‘좋아요’ 2300개를 받아 댓글난 상단에 노출되는 등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FT아일랜드 최종훈(왼쪽)과 씨엔블루 이종현. [중앙포토]

FT아일랜드 최종훈(왼쪽)과 씨엔블루 이종현. [중앙포토]

FT아일랜드 최종훈과 씨엔블루 이종현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2007년 데뷔한 FT아일랜드는 FNC의 개국공신으로 소속사 이미지와 직결되는 그룹이다. 이후 2010년 데뷔한 씨엔블루 역시 밴드로 아이돌의 지평을 넓히며 2014년 FNC의 상장을 이끈 일등공신. 하지만 연일 관련 보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다시 활동 중단, 은퇴 등으로 입장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신뢰도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정용화를 시작으로 이정신ㆍ강민혁ㆍ이종현 등 씨엔블루 멤버 모두 입대하면서 회사 사정도 악화됐다. FNC의 2018년 매출액은 740억원으로 2017년 1166억원 대비 36.57%가 하락했고, 영업손실 60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됐다. 지난해 계열사인 콘텐트 제작사 FNC애드컬처 지분 30.51%를 SM엔터테인먼트에 넘긴 데 이어 신인 육성 자금 확보를 위해 지난 12일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FNC는 한때 SM·YG·JYP와 함께 4대 기획사로 주목 받았지만, 엔플라잉과 SF9 등 세대 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흑자 전환도 힘든 상황이다.   
 
상장사는 아니지만 메이크어스와 어라운드어스의 손해도 막심하다. 영상 채널 딩고 등을 운영하며 ‘모바일 방송국’으로 알려진 메이크어스는 지난 1월 정준영과 전속 계약을 체결한 지 두 달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올해 매출 4000억원 달성과 내년 상장을 목표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꾸준히 확장해 왔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어라운드어스는 하이라이트가 만든 신생 기획사다. 2009년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서 비스트로 데뷔한 이들이 2017년 팀 명을 바꾸고 독립했으나 용준형 탈퇴로 어렵게 지킨 팀의 의미가 퇴색됐다. 지난해 윤두준을 시작으로 올해 양요섭이 입대했고, 이기광과 손동운도 입대를 앞두고 있어 회사 운영 자체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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