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우리 부부의 사전에는 어떤 단어 담겨있나요

중앙일보 2019.03.15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44)
영화 '말모이' 스틸컷. '말모이'는 말 그대로 말을 모은다는 뜻으로,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한 일본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쓴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 스틸컷. '말모이'는 말 그대로 말을 모은다는 뜻으로,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한 일본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쓴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흐름을 바꾸었던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지역별로 행사를 준비하고 각 방송사는 다양한 기획을 통해 이날을 되새기고자 하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 초에는 ‘말모이’라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죠. 말 그대로 말을 모은다는 뜻을 가진 영화는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한 일본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쓴 조선어학회의 이야기입니다.
 
‘말은 곧 정신’이라고 말하며 같은 뜻이지만 다르게 쓰이는 전국 각지의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몰래 숨어 표준어를 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기도 합니다. ‘후려치다’와 ‘휘갈기다’는 어떻게 다른지, ‘엉덩이’와 ‘궁둥이’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긴 시간 노력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죠. 영화는 일제 강점기에 보통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우리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생각합니다.
 
‘어떻게 지킨 우리말인데 나는 지금 그 말을 잘 쓰고 있는가?’ 글을 쓰려고 앉으니 나는 그 소중한 우리말을 부부 사이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였는데, 보는 내내 멍해지며 내가 쓰는 우리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SNS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한 남편의 이야기였습니다. 요즘 부쩍 지친 남편이 아내에게 듣고 싶었던 한 마디는 “여보 힘들지?”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도통 그 말을 안 해주더랍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내 말을 따라 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아내에게 듣게 된 한마디가 “여보 힘들지?”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알아채고 표현해주고 있을까 생각했던 글이었죠.
 
지친 남편이 듣고 싶었던 한 마디는 "여보 힘들지?" 였지만 아내가 도통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photoAC]

지친 남편이 듣고 싶었던 한 마디는 "여보 힘들지?" 였지만 아내가 도통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photoAC]

 
말은 곧 정신입니다. 내가 하는 말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기게 마련이죠. 생전 처음 보는 부부라 해도 그들이 쓰는 단어와 나누는 대화만으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서로 간에 오가는 말도 점점 줄게 되죠.
 
즉문즉답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법륜스님이 받는 질문 중에 결혼에 관한 질문이 참 많습니다. 한 번은 어떤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은지 묻는 말에 스님은 ‘결혼은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결혼과 연애는 다른데 연애와 결혼을 혼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연애는 별거, 그러니까 같이 살지 않으면서 서로 좋은 때만 만나지만 결혼은 좋으나 싫으나 동거, 한집에 산다는 큰 차이가 있죠.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상에 떠돌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남자가 결혼 후 제일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묻는 후배의 질문에 재미있게 놀고 이제 여자친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계속 같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널브러져 있고도 싶은데 신경 써야 하는 일종의 간섭꾼이 생긴 셈이죠.
 
법륜스님은 덧붙여 결혼할 때는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으로 인물을 보고 또 능력을 보는데, 막상 결혼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질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굴에 문제가 있어 고민인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 생활 습관의 차이나 성격의 차이가 문제가 되죠.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짜증을 내는 것, 자기 주장이 강한 배우자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 나는 청소하고 남편은 어지르기 때문에 화가 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죠.
 
법륜스님은 결혼할 때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으로 인물과 능력을 보는데 막상 결혼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질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굴에 문제가 있어 고민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법륜스님은 결혼할 때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으로 인물과 능력을 보는데 막상 결혼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질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굴에 문제가 있어 고민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그러니 소소해 보이지만 결혼생활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보지 않고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우선순위가 아니어도 되는 것만 보고 결혼을 하니 막상 결혼하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룸메이트로 같이 지낼 때 무엇이 중요한가요? 상대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혹시 잘 다투지 않는 부부라도 나만 기억하는 상처받은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방송인 윤택 부부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서로의 다른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남편과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여러 번이라는 아내의 말이 맞붙습니다. 물론 싸움의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남편이 기억하지 못하는 말이 상처가 되어 남아있었습니다.
 
한 번은 대화하던 중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 집에 가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평생 룸메이트가 된 아내에게 당신 집으로 가라는 말은 상처가 되어 남은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나만이 맘에 담아두고 상처받을 것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어 진지하게 그 말이 나에게 어떻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상처의 말은 어느 순간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또 다른 화살이 되어 상대방에게 향하게 됩니다.
 
룸메이트인 우리 부부의 사전에는 지금 어떤 단어가 담겨 있나요? 지우고 싶거나 새롭게 담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어떤 단어인가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 ‘말모이’도 꼭 한 번 봐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랬듯이 어쩌면 고민 없이 쓰고 있는 우리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믿습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