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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범에 속아 통장 건넸다가 졸지에 ‘공범’

중앙일보 2019.03.15 12:00
서울 성동경찰서는 15일 보이스피싱 인출책, 수거책 등 4명과 이들에게 통장과 현금카드를 건넨 8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보이스피싱범이 택배 기사 옷을 입고 통장을 수거하는 CCTV 화면. [사진 성동경찰서]

서울 성동경찰서는 15일 보이스피싱 인출책, 수거책 등 4명과 이들에게 통장과 현금카드를 건넨 8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보이스피싱범이 택배 기사 옷을 입고 통장을 수거하는 CCTV 화면. [사진 성동경찰서]

어느 날 주류 판매 업체로부터 “세금 감면에 통장이 필요한데 빌려주면 돈을 주겠다”는 문자를 받은 A씨. 꺼림칙했지만 업체에서 보낸 택배기사에게 통장만 건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허락했다. 이후 경찰로부터 주류 판매 업체는 보이스피싱 조직이었고, 범죄에 자신의 통장이 이용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약속한 돈도 받지 못한 A씨가 졸지에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건넨 8명을 포함해 돈 인출책, 통장 수거책 등 12명을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두 단계로 나눠 사기행각을 벌였다. 먼저 피해자들의 돈을 입금할 통장과 이를 인출할 현금카드를 건네줄 사람을 찾았다.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주류 판매 업체인데 세금 감면에 통장이 필요하니 3일만 통장을 빌려주면 3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혹은 대출신청자에게 “입출금 실적을 만들어 신용도를 높여야 하니 현금카드가 필요하다”고 속여 통장과 카드를 받아냈다. 
 
통장을 수거한 택배기사를 의심하는 피해자에게 "행낭 업체"라고 속인 보이스피싱 조직원. [사진 성동경찰서]

통장을 수거한 택배기사를 의심하는 피해자에게 "행낭 업체"라고 속인 보이스피싱 조직원. [사진 성동경찰서]

보이스피싱범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택배기사로 분장하고 물건을 받아오는 치밀함도 보였다. 한 피해자가 “송장도, 트럭도 없는 택배 아저씨가 서류를 가져가는 걸 봤다”고 의심하자 “행낭 업체”라고 거짓말하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행낭서비스는 주로 기업의 본사와 지점 등 주기적으로 서류 및 우편물을 주고받는 이들이 택배 대신 이용하는 정기적인 퀵서비스다.  
 
조직은 통장과 카드를 확보하자 또다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검사를 사칭했다. “○○씨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확인하고 있다. 일단 우리가 알려주는 안전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안전 계좌는 피해자에게 얻은 통장이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해 10~12월 두 달 동안 무려 45명에게 총 4억원 상당을 편취했다. 피해자 신고로 덜미를 잡힌 돈 인출책과 통장 수거책 등 4명 중 3명은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통장을 넘겨준 8명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성동서 관계자는 “어떠한 이유든 타인에게 자신의 카드나 통장 등을 넘기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라며 “범죄에 이용되지 않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될지 몰랐다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거나 법정에서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자신의 계좌에 돈을 건넨 피해자가 소송을 걸면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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