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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집엔 한 대씩…19세기 파리 여성 '교양 필수' 이것

중앙일보 2019.03.15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15)
피아노 치는 소녀들. 르누아르 그림. 19세기 말.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피아노 치는 소녀들. 르누아르 그림. 19세기 말.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쇼팽의 큰 성공은 때마침 열린 피아노의 시대가 뒷받침했다. 바이올린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고 피아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바이올린(첼로도 마찬가지임)은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가 안정되고 깊어진다고 한다. 목재 재질 때문인지 아니면 겉에 칠하는 유약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도 최고의 바이올린은 1720년부터 20~30년간 이탈리아의 유명 제작자가 만든 것들을 꼽는다.
 
피아노는 산업혁명과 기계산업의 발달에 따라 개량되고 발전하였다. 그 개량은 20세기 들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피아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넓은 음역, 강약 조절의 용이함, 맑고 풍부한 음향, 배우기 쉬운 연주법, 선율과 화성의 동시연주, 독주와 협주 등 다양한 사용, 그리고 관리의 편의성과 내구성 등 피아노의 장점은 매우 많다.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악기가 피아노이다.
 
피아노의 원형은 하프시코드(이탈리아어로 쳄발로 Cembalo)이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막대기에 달린 갈고리가 현을 뜯는 구조로, 소리 발생의 원리는 기타와 같았다. 이 때문에 건반을 세게 치든 약하게 치든 음량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셈, 여림 변화를 주기 어려웠다.
 
18세기 초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Bartolomeo Cristofori)가 이것을 개량한다. 그는 해머로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구조를 채택해서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건반을 누르는 강도에 따라 소리의 강약조절이 가능했다. 이 새로운 악기는 ‘피아노 포르테 Piano Forte’로 불렸다. 그 이름에는 여린 음과 센 음을 모두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로도 피아노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 발전의 방향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강한 프레임이다. 폭넓고 풍부한 음향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현을 사용해야 하는데, 많은 현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강한 프레임이 있어야 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철강 산업의 발달로 뒷받침되었다.
 
복잡한 현대의 피아노 액션 메커니즘. 피아노는 악기 중에서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음향이 만들어진다. [사진 스타인웨이 홈페이지]

복잡한 현대의 피아노 액션 메커니즘. 피아노는 악기 중에서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음향이 만들어진다. [사진 스타인웨이 홈페이지]

 
둘째는 건반에 가해지는 힘을 해머를 통해 현으로 전달하는 건반 기계장치의 발달이다. 이것을 피아노 액션 메커니즘(Piano Action Mechanism)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피아노는 모든 악기 중에서 음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가장 복잡하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치면 지렛대 모양의 건반의 다른 끝이 다른 지렛대 막대를 밀어 올리고, 그 막대는 다시 다른 막대를 밀어 올려 그 막대 끝에 달린 해머가 현을 타격하여 소리가 난다. 이 해머는 시계추처럼 자유로워야 하고 동시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액션 메커니즘의 핵심이다.
 
1820년에서 1840년 사이에 이 메커니즘과 해머의 구조, 프레임, 현이 급속히 좋아져서 피아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냈다. 피아노는 악기 중의 악기가 되었다. 관현악곡, 합주곡, 실내 악곡 등 거의 모든 곡은 일단 피아노로 시연되어 다듬어지거나 평가되는 과정을 거쳤다. 피아노 연주자들은 음악이 있는 모든 곳에서 필요했다. 피아니스트와 음악가는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제작 산업도 신속히 발달하여 피아노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1800년대 초·중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은 거실에 피아노를 들여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부녀자들에게 피아노는 필수 교양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 대략 100만명의 인구와 20만 가구가 있었던 파리에 6만대나 되는 피아노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당시 피아노 한 대 값은 지금으로 환산했을 때 수천만 원을 넘었다.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 1720년에 만들어진 이 피아노는 그가 만든 피아노 중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사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 1720년에 만들어진 이 피아노는 그가 만든 피아노 중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사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많은 피아니스트가 파리로 몰려왔는데 그중 단연 빛난 사람은 쇼팽과 리스트였다. 두 사람은 피아노의 시대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했고 피아노의 시대가 확고해 갈 때 그들의 전성기도 열렸다. 피아노 음악이 만개했고 그에 따라 연주 기법도 발전해갔다. 두 사람은 ‘Piano Forte’의 특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이용했다.
 
쇼팽은 피아노의 여리고 부드러운 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감미롭고 섬세한 연주와 곡을 선보였다. 발달한 피아노에 맞는 연습곡을 작곡해 당시 피아니스트들의 감탄을 받았다. 리스트는 쇼팽의 연습곡이 손가락의 기교를 단련시키면서도, 딱딱한 일반 연습곡과 달리 예술적 깊이를 갖춘 것에 감탄했다. 연습곡 외에도 소품 위주인 쇼팽의 피아노곡은 부드럽고 유려한 피아노 음향의 특성을 잘 살렸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나 전문연주자, 출판업자에게 인기가 많았고 악보가 잘 팔렸다.
 
이에 반해 리스트는 피아노의 세고 강한 장점을 살려 힘차고 화려한 연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쇼팽의 연습곡에 자극받은 그는 나중에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살리는 장식적이고 어려운 연습곡을 발표하였다.
 
프랑스에는 유명 피아노 제작자로 플레옐(Pleyel)과 에라르(Érard)가 있었는데 피아니스트로서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사용 피아노도 달랐다. 쇼팽은 플레옐사의 피아노를 좋아했다. 파리 시절 초기 그가 존경했던 선배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가 플레옐사의 파트너인 것이 영향을 준 것일 수도 있다. 피아노 제작자 플레옐은 쇼팽이 소개하여 피아노가 판매되면 판매액의 10%를 커미션으로 그에게 주었다.
 
쇼팽이 사용했던 플레옐 피아노. 1839년 제작. [사진 플레옐 피아노 홈페이지]

쇼팽이 사용했던 플레옐 피아노. 1839년 제작. [사진 플레옐 피아노 홈페이지]

 
반면 리스트는 에라르 피아노를 애용했다. 그가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숙소가 마침 에라르 제작소의 맞은편에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에라르는 그때 막 이중이탈장치라는 혁신적인 액션 메커니즘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건반이 충분히 복귀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건반을 눌러도 해머가 회복되어 현을 타격할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화려하고 빠른 연타가 가능했다.
 
두 피아노의 톤도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과 성격에 맞았다. 플레옐 피아노는 터치감이 부드러우며 섬세한 톤을 가지고 있었고 에라르는 더 우렁차게 울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중국의 피아노 제작사들이 낮은 가격에 품질이 좋은 피아노를 생산하면서 오랜 전통의 피아노 제작사들이 경쟁력을 잃었다. 1807년 설립된 프랑스 제일의 피아노 회사 플레옐사는 2013년 들어 프랑스 내에서의 피아노 제작을 중단했다.
 
영국 최고의 피아노 제작사 브로드우드는 그 전인 2003년에 간판을 내렸다. 회사 설립 265년만의 일이었다. 만년의 쇼팽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브로드우드 피아노를 사용했다. 그 피아노의 터치감이 플레옐 피아노의 그것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공연장에서 흔히 보는 그랜드 피아노의 전형은 대체로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스타인웨이(Steinway)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스타인웨이의 피아노사는 앞의 두 회사보다 늦게 유명해졌는데 이 회사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어서 2013년 한 헤지 펀드에 회사가 넘어갔다. 요즘은 보급형은 디지털 피아노가 대세인 것 같다. 다음 이야기는 쇼팽이 파리 시절 초기에 자주 만나 어울렸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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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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